September 23, 2004
Morning Mart
1.
"오징어맛이 다 나갔네요" 관계(?)의 시작은 아마도 이 말 한 마디였을 것이다.
기껏해야 일주일에 한두 번 들러서 햇반이나 콜라를 사갔을 뿐인데.
거스름돈이 남으면 동전 짤랑거리는 게 싫어서 맥스봉 치즈맛, 오징어맛.. 그 중에 오징어맛을 몇 번 골라갔을 뿐인데.
더구나 그날은 맥스봉 생각은 아예 하지도 않았는데.
남자는 맥스봉 오징어맛이 떨어진 게 자기 잘못인양 안타까운 억양으로 처음 말을 건넸다
" 오징어맛이 다 나갔네요"
2.
편의점도 아닌, 그렇다고 수퍼마켓도 아닌. 그저 어정쩡한 형태로 밤새 불을 밝히고 있는 가게의 젊은 주인과 눈을 맞추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 동네에 살면서 6개월 이상 그 가게를 들락거렸는데도 계산대 앞에만 서면 시선은... 맥스봉 소시지 통이나 사지도 않을 껌, 양주 따위만 훑어내렸다.
젊은 나이에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 서서 하루 종일 계산대 앞에서 책을 보거나 동네 아저씨들에게 담배를 팔고 거스름 돈을 내주는 남자는 과연 어떤 이력을 가졌을까?
가게 앞 간이 탁자에 널부러진 맥주병을 치우던 그가 그 자리에 풀썩 앉아 지나가는 자동차만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을 때. 횡단보도 저 편에 서 있던 나는 .. 그가 어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어떤 경계에 서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이전의 이력이야 어쨌든 간에 계산대 앞에 설 때는 복잡한 내면은 떨치고 잊어야 하는데, 그것만은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서 저렇듯 심란한 표정으로 가게를 지키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3.
며칠간 남자는 보이지 않았다.
대신 어머니인듯한 아주머니가 가게에 텔레비젼까지 켜놓고 "담아줄까?" "뭐 찾아요?" "안녕히 가세요"
그 남자보다 열배 쯤 많은 말을 쏟아내며 가게를 지켰다.
어딘가 취직을 했나보다... 어쩐지 안어울리는 사람이더라니... 그 안경에는 책상 앞이 어울리지... 그래도 그 곳에선 그렇게 복잡한 얼굴로 가슴 철렁하게 하지 말았으면 좋겠어.. 이런 생각들을 하며 안도했는데
오늘은 다시 그 남자다.
똑같은 모습으로 계산대에 서서 "오징어맛이 없네요" 한다.
4.
아파트 뒤편에 페밀리마트가 새로 들어섰던데 그곳으로 옮기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Posted by nuncoo at September 23, 2004 03:28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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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ardpope at July 27, 2011 10:34 AM허니맘- 너의 이야기를 듣고보니 '오징어맛'이 원인제공이었는지도. 후후.
나 상가 수퍼는 아예 안가잖아. 대화에 대한 부담감이 너무 심해서. 힘들었어.
그리고 새로 생긴 페밀리마트가 워낙 기세등등한지라 이 가게는 곧 문을 닫게 될 듯.
물건을 들여놓지 않는지 없는 것도 너무 많고 왠지 몰락의 분위기.
그곳이 편의점이었던 시절, 나는 기껏해야 다섯번정도 갔었는데 말야. 이사하려고 박스 구하러 갔나..? 그랬더니 그 주인아저씨가 (언니가 말한 총각 말고)
"왜요? 이사온지 일년정도밖에 안됐잖아요?"이러더라구. 나 얼마나 화들짝 놀랐던 기억이 나네.
강한 인상의 누군가를 기억하는것도 인간의 본능인데 그남자도 그랬을지 몰라 "저여잔 단아하게 생겨서
맥스봉이라니...게다가 오징어 맛이라니...차라리
치즈맛을 좀 찾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이러지 않았을까나.....? 잼난다. 그곳의 추억!
언니 홈피에 와 보면....참....
언니가 글을 잘 적구나 라는 생각이 다시금
든다는....부러버라~!!!
언니 전 금요일 오전에 내려가요ktx로 표 끊었다가
다시 검색해 보니 무궁화가 있길래 무궁화
타고 갑니다 TT
언니... 이래저래 자리 있는지 좀 알아봐주세요TT
먹고 살기 힘들다는 푸하하하하~~
추석이 지나면, 맘도 생활도 좀 정리가
될 듯 하네요 (나의 바램인지도)
밀양가서 용한 점집 가요...
아무래도 시골이라 서울 보다 단가가 훨싸더라구요
뭐...참고만 하겠지만...
그래도 요즘의 여유가 고맙기도 하고
감사하기도 해요.
오늘은 오토바이를 타고
성산대교를 달렸거든요
너무 너무 좋았어요.
원한다면
다음에 언니에게도 이런 기회를 줄게요^^
화이바도 있다는..
히히히히히~~~~~
유통기한 지난 삼각김밥 나도 먹어본 기억이 있...
유통기한 지난 라면을 끓어먹어본 적도 있고
그치만 이제는 꼭꼭 확인해요.^^;;;
예전에 세븐일레븐에서 알바하던 때가 생각나네요.
항상 점심시간 즈음에...
담배 "디스"를 사러오는 총각이 있었는데...
비쩍마른 몸에 처량해 보이는 눈...
거기다 우울한 목소리...
매일 오다시피한 남자라...
안 오는 날이면 은근히 기다려지기도 했었죠...
아예 문을 열고 들어오면
내 팔은 담배쪽으로 뻗었다는...ㅋㅋ
하지만...
더 생생하게 기억에 남는 건...
유통기한이 지난 삼각김밥을 맛나게 먹었던 일...
ㅡ..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