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ptember 24, 2004
여기.. 가방이 있다
"아주 오래 전의 일이다. 이미 10년이 지났다. 그때 나는 초보 여행자였다. 초보 여행자가 가질 수 있는 모든 설레임과 모든 두려움을 다 지니고 있었다. 모든 만남이 경이로웠고, 모든 헤어짐에 견딜 수 없는 쓸쓸함을 느껴야 했다. 그 여행의 두 번째 행선지에서 아이리스를 만났다. 집으로 돌아가는 리턴 티켓을 복대에 넣어 둔 여행자였다. 그 여행이 내게 마지막 자유로운 여행이 될 것이라고 확신했던 여행이었다. 그때 아이리스는 내게 그녀의 가방을 보여 주었다. 아주 낡은 트렁크. 그녀의 전 재산이라고 했다. 그 안에 들어갈 것은 약간의 옷가지와 그녀의 춤을 위한 의상들이 전부라고 했다." '길에서 만나다' 중에서/조병준/ 디자인하우스 |
여행객들의 가방을 찍고 싶다고 생각한 것은 아마도 인도에 다녀온 이후였을 것이다.
큰 트렁크를 갖고 떠날 때는 몰랐던 여행가방의 경이로움이 작은 배낭 하나를 메고 다니면서부터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처음 인도에 갔을 때는 남의 가방을 눈여겨 볼 여력조차 없었다. 내 짐은 무거웠고 사람들은 가방 조심하라는 얘기만 했다.
침낭까지 얹은 배낭은 풀썩 주저 앉을 때마다 제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뒤로 넘어졌고 배낭과 함께 나도
같이 뒤로 발라당 넘어지기 일쑤였다.
아랫배에 복대를 차고 무거운 배낭을 짊어지고 참 수도 없이 걸었던 기억.
지금 그 배낭은 그 이후로 한번도 바깥에 나가지 못한채, 복대와 함께 수납장 깊은 곳에 있다. ( 스무살때 백화점 스포츠매장에서 며칠간 아르바이트를 하고 아르바이트비 대신 받은 거라 너무 애틋하여 버리지도 못한다.)
인도 이후 나의 가방은 부피도 작아지고 무게도 가벼워졌다.
싱가폴에 갈 때는 기내반입이 가능한 작은 트렁크를 갖고 갔지만 일본에 갈 때는 평소에 메고 다니던 배낭 하나로도 충분했다. 바리바리 싸간 샴푸나 샤워젤 같은 게 흘러내려 배낭이 젖는 일도 생기지 않는다.
가방을 잃어버려서 발을 동동 굴렀던 기억은 딱 한 번.
내가 돌아오고 며칠 만에 집으로 배달된 가방은 저 먼 알래스카까지 혼자 갔다가 다시 비행기를 옮겨타고 온 것이라고 했다.
이제는 공항에 나가면 사람들의 가방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그저 물끄러미 바라본다.
많이 헤맨 자들의 가방은 어느 곳을 헤매다 이 곳까지 오게 된 것일까. 
여행을 끝내고 집에 돌아오던 날.
한 몸 같았던 배낭을 내려 놓으며 .. 나는 아마도 이런 말을 건넸을 것이다.
너와 뜨겁게 상봉할 날이 금방 올 거라고
30리터도 채 안되는 너의 내부에 세상이 가득 담기는 날이..그런 날이 어쩌면 올지도 모르겠다고.
- 저 속에는 내 가방도 있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
( 가방 이야기는 나중에 한 번 더 ... 사진이 남았다 )
Posted by nuncoo at September 24, 2004 12:14 AM
하정- 마지막 한 줄에 느낌표 하나!
싱가폴엔 아주 예전에 부리나케 여행 삼아 갔던 거고.. 몇달 전인데 사실, 까마득하다.
남자친구는 잘 지내나 매우 바쁘심.근데 바삐 사니 보기는 좋다.
연말이 되기 전에 꼭!
KJ- 음,KJ가 정리중인 것 같군.
부산에 잘 다녀오고.. 할머니께 예쁜 짓 많이 하고 오길.
나도 몇 시간 있으면 조런 가방 둘러메고 한과보따리 짊어지고 부산행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우요~^^참, 언니 '살수 그 날 이후'에 대해서 물었죠?흑, 별로 얘기할 거 없어용...그 문자 이후로는 뭐 먼저 온 문자도 없고, 나도 안 보냈으니~ 추석 잘 지내라고 이따가 한 통 날릴려구용!^^ 으아, 내가 사 준 향수가 슬슬 아까워지네...ㅡ.ㅡ내 남자도 아닌 것을!정말로 '정리 중'이라면 차암 좋겠지만서두, 그게 아니라면 (미련은 남으나) 맘을 깨끗이 접어야지요...(휴우...언니처럼 한숨 한 번...6^^)
암튼암튼!!! 명절 연휴 따닷~하고 푸지임~하게 잘 보내용 언니!담주에 잘 먹어서 빤질빤질한 얼굴로 만나요오~^^
Posted by: KJ at September 25, 2004 01:19 AM 싱가폴에 왜갔어? 놀러? 추석 잘 보내라. 남친과는 여전히 잘 지내고 있니? 벌써 추워지는 데 새 소식은 아직 없네. 그래도 너는 늘 내게 그 자리에서 자신을 발전시키고 있을거라는 믿음으로 남는다.
연말전에 보고 맛난 거 먹고, 즐거운 파티처럼 수다도 떨고 그래야지.
날이춥다. 덩달아 맘도 좀 춥다. 그 맘을 조금 더 열심히 살아서 따뜻하게 하련다.
Posted by: 조하정 at September 25, 2004 01:05 AM허니맘- 여행가방 끌고가면 '저이는 어딜 갈까?' 대놓고 부러워했는데 기저귀가방 대용이었다면 억울하다.
걸식님- 어제 보니 달이 제법 살이 올랐더군요.
올해는 꼭 달을 보고 싶네요.
funnyday - 네팔 가신다는 얘기 들었습니다.
돌아오면 함께 나눌 얘기가 많겠어요
따위님-
아침 저녁으로 창문 닫고 열어주고.
흐트러진 침대 정리도 해주고
밤에 일어나기 귀찮을 때 불도 꺼주고
아침내내 울리는 자명종도 눌러주고
이불 홑청 갈 때 모서리도 잡아주고
이마의 뾰루지도 짜주고
가끔 머리도 묶어주고
그럼 30년은 안전할듯... 흠
푸른땅- 음.. 복도에서 매일 보는 여러 외국인들의 얼굴이 스쳐간다는. 그 중에 하나요?
경품좋아하는 우리 오빠가 백화점에서 15만원 이상 구입한후 받아낸 던롭여행용가방.검정색과 빨간색..
나는 왜 두개나 받냐고 하나는 다른걸 받자고 했었는데 애기 낳고 정말 잘 써먹는다는..
시댁 갈때마다 짐이 대박 많은데, 그때 여행용가방이
얼마나 편하던쥐 ^^ 그래서 난 이 글을 보고 나서,
아득함 보다는...시댁 생각이 났다는.......ㅠㅠ
보름달 제대로 바라본게 언제였는지...
기억도 나지 않습니다...
그래도 또 어김없이 추석이 왔네요...
그나마 이번 추석 연휴에는...
가방도 없이...1박 2일로...
어딘가 펜션에 다녀올 예정이라...
그리 심심하지는 않을 듯...
넌꾸님도 즐추하시기를...
이런 우연이~
방금 전 메신져에서 여행저널리스트? 친구와 얘기하다가 조병준씨 얘기를 나누고 이책 얘기도 했는데~
여기와보니 ㅋㅋ
좋은 추석^^
달보고 소원도 빌고^^
가방을 싸라는 말씀이시군요. 그것도 가볍게 싸라는 말씀이시군요. 어느 날 제 아내가 제게 그런 말 할까봐 무섭습니다요. 그럴 땐 이렇게 해야지요.
내가 이집에 장가와서 이날 이때까지 한눈 한번 안 팔고 저녁이면 커텐치고 아침이면 커텐 걷으면서 일부(婦)종사하며 조석으로 아내를 섬김에 소홀함이 없었거늘 이제와서 가방 싸라하시다니, 아이고 신령님, 아이고 부처님, 세상에 이렇게 원통하고 절통하고 분통한 일이 세상천지에 어디 또 있겠습니까요.
Posted by: 따위 at September 24, 2004 09:26 AM언니..
저에게 new friend가 생겼어요...^^
제가 생각하고 있는 여행을 좀 더 현실적으로
만들어줄 수 있는 친구라 너무 좋아요!
단지..그 사람이 한국말에 서툴러서...
제가 무쟈게 트레이닝을 시켜야한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