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ctober 10, 2004
관계
당신들은 나에게 무엇인가.
자주 얼굴 보면서 언젠가 한 번 쯤은 같이 밥 먹으면서 찌개를 나눠 먹은 적도 있었을텐데 주말에 뭘 하는지, 친한 사람을 만나면 어떤 식으로 웃는지 알지 못한다.
얼굴 보면 잘 지냈느냐, 지금은 어디 사느냐 호들갑스럽게 반가워하며 뒷날을 기약하겠지만 어쩌다가 당신에게 전화 걸 일이라도 생긴다면 두세 명은 거쳐야 당신 번화번호를 알아낼 수 있을 것이다. 전화를 건 나는 뻔한 인사를 녹음기처럼 읊어대며 어느 타이밍에 본론을 꺼내야 할지 몰라 무척이나 조바심을 내며 불편해 하겠지. 그런 나에게 당신은 무엇인가.
아침저녁으로 반가운 인사를 건네며 만나고 헤어지지만 나 속상한 일이 생긴다해도 '나의 얘기를 들어주세요'라며 당신을 붙잡는 일은 없을테고. 당신이 결혼을 하거나 아기 돌잔치를 하게 된다면 마땅히 방문하여 축하하고 박수를 쳐주겠지만 주말에 영화를 보자고 전화하는 일은 당신에게도 나에게도 부담스러운 일이겠지. 당신은 나에게 무엇인가.
잘못된 처사에 함께 분개하고 신문기사를 돌려보았지. 그래도 '어젯밤에 펑펑 울다 잠들었는데, 혹시 그런 적 있어요?' 이런 질문 따위를 건넨 적은 없다. 함께 수다를 떨며 웃은 기억이 없지는 않은데, 안보이는 며칠간 당신의 안부도 궁금해질까?
당신에게 말하는 것과 말하지 않는 것이 자동으로 제어가 되서 어느날 보니 그렇게 용의주도한 자신이 끔찍하게 느껴질 때.당신은 내게 무엇인가.
'누구누구 알아?'라고 누군가 나에게 물었을 때, 떠오르는 것이 당신의 이력 몇 줄 이었을 때..'알긴 아는데 잘은 몰라'라고 말문을 닫고 말 때. 그러고 보니 당신들과 얼굴을 마주치며 지낸 지가 몇 년이 지났는데도 사적으로는 만난 적이 한 번도 없고, 사실은 내가 당신들을 모르는 것이나 마찬가지다..라는 결론에 맞닥뜨렸을 때.. 당신들도 결국은 나와 마찬가지 일 거라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을 때..
누군가 '누구랑 친해?'라고 물었을 때 대답보다 '이건 몹시 복잡한 질문이잖아'라는 생각이 먼저 들 때.
'안친해'라고 말하자니 그럼, 함께 보낸 시간은 다 무엇이었나 싶고
'친해'라고 긍정하자니 겉으론 허물없이 어울리는 듯해도 '나는 한번도 그에게 나의 속내를 보인 적이 없었다'라는 생각에 망설여지고
'60%정도 친해'라고 말하자니 채워지지 못한 40%를 설명하는 게 번거롭고
'나한테는 여러가지 내가 있는데 그 중에 3번 번호표를 달고 있는 나와는 아주 친해'라고 말하자니 더 복잡하고
'친한 사람'과 '안친한 사람' 이 두 가지 분류 말고 좀더 면밀하고 섬세한 분류는 없는 것일까? 생각도 해보다가
결국은 '어느 면에서는 친해'라고 나에게는 가장 근접한 대답이나 대답을 기다린 이에게는 모호하기 그지 없는 말로 마무리 짓고 말 때.
잘 아는 듯, 친한듯 하지만 돌아서면 결국은 아무 관계도 아닐 수도 있는.
당신들을 어느 범주에 끼워넣어야 할지 아직도 망설이고 있는 나에게
나는 묻는다. 당신들은 나에게 무엇인가.
- 종일 잔 후에, 안다고 하는 사람들의 미니홈피를 어슬렁거리다가.
Posted by nuncoo at October 10, 2004 01:23 AM
저 또한, 그냥 지가나는 블로거의 하나일 뿐이고, 어쩌면 이런 엔트리에 글 남기는 것 조차 주제넘는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같은 생각이라서 그저 '나도, 나도!' 하는 기분으로 남겨봅니다.
어느새 돌아보면 내가, 그리고 나를 정말로 '안다' 라고 하는 사람은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 아니 이제는 한손으로도 충분히 꼽을 정도가 되어가고 있고, 그 사람의 생김새를 (혹은 아니거나) 인지하고, 성명과 기타 사회적인 몇가지 이력을 통보받아서 '안다' 라고 하는 사람은 제 몸속의 뼈를 다 꺼내서 세어도 모자를 지경이 되어가고 있네요.
이거... 잘 살고 있는 걸까요?
다른 사람들도 다 이렇게 살고 있는 걸까요?
xxiaa -평소에는 못챙기니 싸이에서라도 챙기자.
요새는 그런 맘을 갖고자 노력 중입니다. --;;)
공감 팍 꽂히는데요.
싸이월드 1촌이란 섭섭찮게 두루두루 챙겨줘야 될 신경쓰이는 사람들의 목록, 미니홈피는 흠 안잡히게 고르고 골라 차려입는 결혼식 참석용 정장같은.. 뭐 그런게 되어 버렸어요. 그게 그냥 참 그렇네요.
그 와중에 내 홈피는 왔수?
나는 언니에게 뭔지 모르겠지만
언니는 나에게 '*** **'
막상 쓰려니 민망 ^^;;
나의 싸이에 그대 글을 가져갔네. 답글이 쓰고싶더군. 함부로 퍼간 거 용서하게.
Posted by: 곰돌이 at October 11, 2004 01:42 PM그런 삶을 인정하고 살아라.
Posted by: 곰돌이 at October 11, 2004 01:21 PM모두-블루블루의 답글을 보니 그 아래 걸식님이나 고무다라이가 뜨악해하는 이유를 알 것도 같음.
누구를 대상으로 한 말이라기 보다는
내 인간관계가 너무 얕고 좁다는 생각도 들고,
당체 규정 안되는 관계들이 많아서 혼자 넋두리 좀 해본 것임.
그러니 괘념치 마시길.
언니 오늘 최민식 사진전 댕겨 왔는데 좋았다는...
광화문 우체국 옆건물, 동아일보 구사옥에서
단돈 2000원에 모신답니다. 평일은 9시까지래요
근데 지나가면서 봤는데...그 미술관 옆에
식당 있거든요, 어떤 여자가 밥 먹는데 밥이 아주
잘 나오는 것 같았다는, 진짜 유리창 넘어 그 밥이
어찌나 맛있게 보이든지... 그거 먹고 싶었지만
혹시나 비쌀거 같아 TT 남대문 시장가서 갈치조림
먹었는데...... 너무 많이 먹어 배 터질라고 해요
그리고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 봤는데요,
영화 ING 이후에 그렇게 많이 자 본 영화가 없다는..
(절대 그건 극장에서 안 보길 권함)
뭐..윗글에 대한 코멘트로 하기엔 좀 이상하지만..
딱히 방명록이 없으니,,,.
이렇게 한명이라도 친한척 하면 어찌 어찌 관계는
유지 되는 것 아니겠어요, 푸하하하하~~
내가 싸이월드를 쫌 싫어하는 이유가, 다들 너무 착한척+귀여운척+인간성 좋은 척 하기 때문이지. 돌아댕기다 보면 서로 뒷담화하던 사람들끼리..방명록에 친한척 글남기고 반갑게 환영하고 그런 분위기잖어~
친한것도 유행처럼 뜨거웠다 식었다 하는거 느무 싫어. 나에게 있어서 언니는~ 음..점점 높은순위로 올라가고 있는 사람이쥐 ㅋㅋㅋㅋㅋㅋ 그러다 0순위 되면 퓌곤해지는거 알쥐???????
오늘, 인맥 중 하나와 싸웠으요..?
이 글은..뭣이랄까..
답글을 달고자 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스스로 발끝을 내려다보게 하는..
'그동안 Nuncoo님에게 잘못한 게 뭐 있지?'
'우리는 어느정도 자주 연락을 주고받았으며,
얼마나 빈번히 만났던가'를 점검하게 합니다.
그러다가 순간,
"아띠, 그냥 나 친한사람 부류에 끼워줘!"..라고
땡깡을 부려볼까..라는 충동도 느껴지고..
아무튼, 괜히 불안해지는....
*마지막 당부 한마디: 그동안 내가 섭섭하게 했다면
화 풀어~~~
평생..해결하지 못할 문제...
Posted by: 푸른땅 at October 10, 2004 11:54 AM...맞는 말씀이시네요.
Posted by: nipple at October 10, 2004 11:04 AM오~~ 어떤 코멘트를 달아야 할지 초난감!!!
Posted by: 불타는고무다라이 at October 10, 2004 08:54 AM헉,
말문을 잃음...
누구요? 저요? 저 말씀이십니까?
저는 지나가는 블로거인데요.
그냥 조용히 지나가겠습니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