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vember 08, 2004
무지
가끔은 내 뇌조직에 문제가 생겨서 말을 관장하는 뇌와 입을 연결해주는 신경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는데.
가령 '고맙습니다'내지는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해야 할 타이밍에 난데없이 이 둘이 뒤섞여서 '곰사합니다'라는 말이 나온다던지
머리 속에서 혼자 생각하고 있던 게 툭 튀어나와서 물건 값을 치르면서도 "얼마예요?" 할 것을 "8시예요?" 라고 말해서 모두가 난처하고 우스꽝스러운 상황을 만들어내는 일이 종종 있다.
머리와 입의 속도가 안맞는 건 더 큰 문제다 . 버퍼링만 하다가 말도 못꺼내는 경우가 많고, 입이 둔한 날은 발음도 엉키고, 그 가운데 속도를 내자니 말은 제 멋대로 건너뛰기를 해서 부연설명 없이는 '뭔 소린가' 싶을 정도다.
그 뿐인가? 뭔가에 집중하고 있을 때 누가 말이라도 걸면 장면전환이 금방 되지 않아서 열에 아홉은 버벅거린다.
오늘 일은 다른 얘긴데, 역시 뇌의 노화현상과 무관하지 않겠다.
저녁에 어디 좀 나가려는데 밤새 자동차의 미등을 켜놓았는지 시동이 걸리지 않는 거다.
왜 깜빡했니.. 탓할 경황도 없이 매직카서비스에 전화를 해서 금방 해결했는데, 좀 있다가 다시 시동을 걸어보니 자동차는 또 묵묵부답.
서비스 기사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한번 방전이 되면 시동을 켜둔 채 30분 이상 충전을 했어야 한단다.
왜 진작 알려주지 않았느냐고 했더니 내가 하도 급하게 차를 몰고 나가길래 다 아는 줄 알고 당부를 안했다는 것이다.
10여년 동안 운전을 하면서도 이런 일이 이제서야 일어났다는 게 기이한 일이긴 하지만 그게 축복인지 재앙인지는 모르겠고
암튼... 관심 없는 일, 하다못해 끌고 다니는 차에 대해서도 나는 이렇게 무지하다.
그러고 보니 오늘의 해프닝은 나의 무지함과 다 낡아 고물이 된 머리가 만들어낸 합작품이로세.
Posted by nuncoo at November 8, 2004 02:16 AM
허니맘- 나의 부실함이 모든 사람들의 즐거움이지.
덜떨어진 행동을 할 때마다 어찌들 좋아하는지.:)
난 언니의 그런 뇌조직을 쬠 좋아라하는데. 재밌잖어.ㅋㅋㅋ 슬프지만 진실!!!!!
Posted by: 허니맘 at November 11, 2004 11:50 AM대화가 예상에서 하나만 어긋나도 대응을 못하는 상황이겠죠?
거기에 저처럼 노화현상까지 나타나면 더 괴롭습니다.
아 정말요, 뇌와 입을 연결해주는 신경에 관한 이야기는 100% 공감이에요.
그래서요, 전 예상되는 대화를 머릿속에서 시뮬레이션을 돌려요. 근데도 내가 입을 열어야 할 타이밍엔 말이 안나오거나 엉뚱한 말이 나오기 일쑤. 어쩌면 시뮬레이션이 더 안좋은지도 모르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