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vember 21, 2004
남자가 들려준 이야기
남자는 눈에서 불이 났다고 했다.
그녀가 그렇게 쉽게... 물론 연애중에도 적극적인 건 남자 쪽이었지만 전화로 일방적으로 이별을 통보하고 그렇게 떠날 줄은 몰랐다고 했다.
얼굴 보고 얘기하자고, 한 번만 더 기회를 달라고 애원을 했지만 여자는 이미 오래 전부터 고민해왔노라고, 결정을 번복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남자의 얘기가 채 끝나기도 전에 전화를 끊어버렸다.
미칠 지경이었던 남자는 종일 남자는 술을 마셨다고 했다. 그리곤 고속버스에 올랐다. 방학이라 고향으로 내려간 그녀가 있는 곳 마산집으로 찾아가 이렇게 끝낼 수는 없다며,어깃장이라도 부려볼 참이었다. 아니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그는 금방이라도 고꾸라져 죽어버릴 것만 같았다고 했다.
사랑에 빠진 것도 그가 먼저였다. 몇 달간 애만 태우다가 사귀자는 고백을 했고 그 후로도 또 몇 달간 공을 들인 끝에 남자는 여자의 공식적인 애인이 되었다. 대개의 연인들이 그렇듯 다투기도 하고 헤어질 위기도 있었지만 그래도 그렇게 끝나서는 안되는 일이었다.
버스 안의 남자는 취기에 감정이 고조되어 그동안 자신이 잘못했던 일들을 혼자 꺼내놓고 찔끔찔끔 눈물까지 흘린다.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처량한 남자가 된 것 같다. 그래도 사랑하는 사람을 붙잡기 위한 건데 무슨 일이든 못하리. 사랑 때문에 목숨을 버렸던 베르테르니 로미오 같은 인물들을 떠올리며 남자는 눈물을 닦고 비장한 눈빛으로 창밖의 어둠을 본다.
요의가 느껴진 건 바로 그때였다. 남자는 술을 마시는 동안 자신이 한번도 화장실에 다녀오지 않았다는 사실을 그제서야 깨닫는다. 맥주에 소주를 섞어먹고 안주로 홍합탕까지 먹었으니 방광은 부풀대로 부풀어 용량초과를 넘어서고도 남았을 것이다.
남자는 아랫배에 힘을 꽉 주고 자세를 여러번 고쳐 앉는다. 시계를 보니 마산에 도착하려면 아직도 두 세시간은 더 가야한다. 휴게소는 이미 지나쳤는데 그때는 마침 여자 집에 도착해서 건넬 말을 고르느라 휴게소에 서 있다는 것도 의식하지 못했다.
남자는 서서히 초조해지기 시작한다. 여자생각이고 뭐고 온 신경이 금방이라도 터질 것만 같은 아랫배에만 쏠린다.
어찌나 힘을 주고 안절부절인지 의자 끝으로 뺀 엉덩이가 슬쩍 허공에 떠서 앉는둥 마는둥이다. 진작에 화장실에 다녀올 걸, 술을 마시지 말 걸.. 순간 상태가 안좋은 길바닥을 지나는지 버스가 잠시 요동하는 사이 참고있던 그것이 찔끔. 급기야 남자는 참고있던 소리를 지르고야 만다.
" 기사님! 잠깐만요... 잠깐만 세워주시면 안될까요?"
" 녜? 이 양반이 무슨 소릴.."
" 진짜 급해서 그러거든요?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 아니, 여기는 고속도.."
" 그게...쌀 것 같다니까요"
남자는 마산에 도착하자마자 여자의 집에는 들르지도 않고 그 길로 서울로 올라왔다고 했다.
그렇게 절박했던 것이 요의에 시달리면서부터는 아무 생각도 나지않고, 그저 오줌만 눌 수 있었으면.. 하는 생각 밖에는 안들더라고 했다.
트럭들 세워놓는 갓길에 버스를 세워두고 수풀에서 일을 보는 순간,
찬 바람에 얼굴을 내놓는 순간,
술이 깨면서 온몸의 막혔던 것이 왈칵 쏟아지는 순간, 그걸로 한 사랑이 끝났구나 실감이 나더라고 했다.
다 그런 것이다.
Posted by nuncoo at November 21, 2004 03:10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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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tomiuk at July 27, 2011 10:50 AM따위님- 왜 생뚱맞게 여기에 답을 다셨수.
텍사스 홀드 엠 뿐만 아니라 무슨 온라인 포커까지
골고루 방문들 하셨더만요.
얼렁뚱땅 다 될줄 알았던 nuncoo잘못이지.
에구야 나도 몰라라라라.
그러면 그렇지. 테스트 해보니 숫자를 적지않아도 되는 구먼. 넌꾸님 일거리 또 생겼다. 안 그래도 연말이라 바쁘실텐데...
Posted by: 따위 at December 14, 2004 06:22 AM허걱. 텍사스 홀드 엠. 야 이 천하의 나쁜 놈아. 넌꾸님 블로그에 와서 이 무슨 패악이냣!!!?
저 놈이 S-code를 어떻게 뚫었을까나.
이제야 언니의 리플을 확인했어요.
정말 저 좀 상담해주세요.
언니 시간 남는 날,
언제 저녁이라도 한번...ㅠㅠ
예전에 누군가 해준 이야기인데,
식품공학과 학생들이 OB공장 견학하고
돌아오는 길이었대요. 평소에는 돈 아까와서
못 먹던 맥주를 아주 원없이 마시고
버스를 탔는데, 길이 꽉 막힌 거예요.
정말 터질 것만 같을 때 길까지 막혀버리면,
정말 견디기 힘들다는 거, 아시는 분은 아실 터...
그래서 종로 몇가에선가 참다못한 학생들이
우루루 버스에서 내려 화장실을 찾아
이리 저리 흩어져서 난리가 아니었다는...
나름 용량이 커서 버스 차창 밖으로
그 재미난 풍경을 유유자적 감상하셨던 분이
들려준 이야기랍니다. 그 이야기 들으면서
내가 그 중 하나였으면, 종로통 빌딩들의
잠긴 화장실들이 얼마나 원망스러웠을까.
그렇게 혼자 불행한 상상에 빠져보았다는...
하하. 저거 정말 창피하지요. 저도요, 언젠가요, 3개회사 연합 워크샵 다녀오는 길에요, 요의를 느껴가지고요, 에궁 조용히 기사 아저씨 한테 가서는 "저, 아저씨. 저 죽겠어요. 차 좀 세워주세요." 했지요.
저 일 보는 동안요, 관광버스 창밖으로 사람들이 내다보면서 "저런, 용량 작은 놈" 하는 소리가 다 들렸다구요. 그 중에는요, 저를 좋아라, 하던 걸들도 울매나 많았다고요. 에궁 망신스러워라.
근데 그게 큰 거나 작은 거나 갈 때 마음 다르고 올 때 마음 다른 거인데...저 남자 분은 대오각성 견성오도 불입문자 하셨구먼요. 할.
곰돌이- 수업이 그 수업이었군. 사진을 기대해봄세.
11월의 신랑,신부는 정말 많더군. 근데 웨딩카나 웨딩드레스, 부케 이런 건 왜 나에게 아무런 감흥을 주지 못하는 것인지.(아,언젠가 말했듯이 근육남도 나한텐 무덤덤한 대상이군)
내가 말한 이 남자는 저러고 몇 개월후 나와 만나기 시작했단다. 나와 헤어진 후에는 어땠는지 물어보지 못했다 :)
올 12월에는 많은 일들이 일어날 것 같다만 꼭 보자꾸나. 네가 들려주는 얘기들이 얼마나 재미있고 유익한데... 보고싶지.
쫑- 전혀 생각치 못한 의외의 얘긴 걸?
나는 네가 무척 까다로울 거라 생각했지. 까다롭게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있겠냐만, 각자의 기준이랄지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상대의 성향이라는 게 있을테니까.
내 짐작엔 네 주위의 남자들이 모조리 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지 않을까 싶다. '그녀가 날 좋아할리 없어' '그녀는 내게 넘치는 사람이야'하면서.
상담 필요.
혁상님-위의 얘기는 들을 때는 깔깔거렸는데, 한 번씩 생각해볼 때마다 마음이 짠했어요.
모든 계기는 다 사소한 법이고. 발버둥쳐도 상황은 흘러가니까요.
Posted by: nuncoo at November 21, 2004 11:40 PM
정말 공감이 가는 글이다.
그래서 난 남자랑 헤어질 때 꼭 다이어트를 시작했어. 거의 먹지 않고 운동만하는 거의 미친 다이어트. 그럼 오로지 먹을 생각에 집착하는라 남자 생각도 그리운 생각도 나지 않지. 그렇게 한달정도 지나면 남자도 잊고 어느새 이뻐져서 새 남자를 쉽게 만났지.
사실 그동안 찐 살도 어쩌면 그남자를 만나 맛난 거 먹이며 찐 것이니 그것들도 다 버리는 것이 진짜 이별일수 있었겠지. 사는 건 참~~~
조금 더 그런 인생의 맛을 알면 나의 글도 좋아질까?
잘 지내고 있다. 어느새 1년이 흘러 헌신부가 되어간다. 오늘 인천공항으로 가는 도로에 많은 웨딩카를 보며 아~~ 나도 저런 때가 있던가 싶더라.
아직 부픈 기대가 남은 넌 얼마나 좋냐~~
시놉 여러개를 골라 쓰면서 사실 맘은 크리스마스 트리며 망년회며 그런 연말의 기대로 달려가고 있어.
그동안 디카수업을 문화센타에서 들으며 새로 뭔가 배우는 기쁨을 누리느라 좋았고, 밤마다 싸이질을 하는 것이 이제 조금 싫증을 느끼면서도 여전히 끊지 못하고 살고 있다.
12월 전에 우리 보나? 살이 많이 쪄서 부끄럽지만 그래도 얼굴을 함 봐야지 싶다~~ 너도 나 보고잡지?~~
제가 지금까지 제대로 된 연애 한번 못 한 건,
상처 받을까봐서예요.
누군가가 좋아도
그 사람에게 버림받을까봐 좋다는 말도 못했지요.
누가 절 좋아해도,
나중엔 제가 그를 더 좋아하게 될까봐 겁이 났구요.
앞서서 걱정하는 습관은 지금도 여전하구요.
이런 저, 문제 있죠?
상담이라도 받아봐야하나...??
사랑에 빠지는 것도 화학 분비물의 내적인 증가,
잊는 것도 다른 분미물의 증가 및 역치의 증가.
다 그런것 아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