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냐, 나도 아프다

치질 수술을 하고 나면 한동안은 변을 보기가 힘들다고 한다.
대충 상상을 해봐도 그렇다. 그 복잡한 공정이야 잘 모르겠지만 암튼 뚫려있어야 할 항문부위를 봉합해놨으니 묽건 굵건 변의 통행이 수술전처럼 자유롭지는 못하리라.
네이버 지식인에서 검색을 해보니 '지식스폰서-상쾌한아침외과 김상석'이라는 분이 답변을 달아놓았다.
치질은 수술후 약 2주 정도 출혈과 진물이 나오며 배변시 찢어지는 것도 어느 정도는 정상적인 증상이라고 한다. 즉, 수술 부위는 꿰맨 상태로 완전히 낫는 게 아니라 배변시 상처가 벌어졌다 붙었다를 반복하며 새살이 차서 낫는다는 거다.
벌써 2년전 이맘때, 내가 열광했던 '다모'의 정형수 작가도 치질수술후 화장실에 갈 때마다 살이 찢어지는 고통 속에 있었다고 한다. 늘 책상 앞에 앉아서 뭔가를 써대야하는 직업이었으니 치질도 어떻게 보면 창작의 고통만큼이나 영광스러운 가시 면류관 같지만 당사자는 꽤나 힘들었나 보다.
그 고통이 얼마나 심했던지 어느 날은 화장실에 앉아 죽을 힘을 쓰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래디에이터가 뽑혀있었다고 한다. 거기서 명대사가 나왔다.'아프냐, 나도 아프다'

어제 이 얘기를 누군가에게서 전해듣고 화장실 래디에이터를 움켜쥔채 '아프냐, 나도 아프다'를 고통스럽게 연발하는 작가의 모습을 상상하니 웃음이 났다.
'다모'에 관한 애틋한 추억이 하나 더 생긴 셈이니 좋은 일이기도 하고 역시 세상일은 한 꺼풀 벗겨놓고 보면 다 희극이다.

이름 대면 알만한 분의, 어쩌면 감추고 싶었을 지도 모를 치질 얘기를 들춰낸 건 이 분이 2년전 8월 30일 한겨레신문 인터뷰에서 한 이야기가 기억나서다.
출산일이 임박했던 그의 부인은 아기를 낳기 위해 병원에 입원하기 전 김을 100장 구워놓고 갔다고 한다. 그걸 보고 그는  '이런 사람 놓고 딴짓 하면 벌 받는다'는 생각을 했고  '사랑은 의리'라고 했다.

'사랑이라는 의리를 지키기 위해 김 100장이라는 공물이 필요한 건가.'
'구워놓은 김 100장이 없어도 지켜져야 하는 게 의리 아닌가.' 하는 이의제기는 이제 점점 포기하는 쪽으로 간다. 살아보니 의리를 주장하기엔 나의 정성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걸 느낄 때가 많기 때문이다. 그래도 투정 한 번 안부리고 일관되게 합리적이니 고맙지.
이번 주는 왠지 공손하고 온화한 nuncoo모드. 까탈부리지 말고 잘해줘야지.

in Diary 2005
Posted by nuncoo at August 21, 2005 02:04 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