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cember 03, 2005
어느 여자아이의 생일
applevirus님의 리뷰를 보고 알게 된 나나난 키리코.
단편에 등장하는 여자들은 막 사랑에 빠져 들떠있거나 섹스 후에 혼자 남겨진 여자들처럼 공허하거나 선배의 남자친구를 빼앗을 만큼 도발적이지만 .. 이제는 슬퍼도 아무렇지 않을만큼 다 자란 여자들이다.
자신의 몸을 더럽히기 위해 섹스를 하고
술 마시러 나갔다가 하룻밤 자게 된 남자와 진짜 사랑에 빠지기도 한다.
그 중에 어떤 여자. 임신을 했지만 버림받을까봐 얘기도 못하고 맴돌았는데 남자친구에게 그새 새 여자가 생겨버렸다. 여자는 남자를 떠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스스로를 위해 거짓말을 한다. 자기도 곧 결혼하게 됐다고.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지만 이제 두 번 다시 그를 만나지 말자고 결심하고 돌아오던 날. 여자는 앞으로 평생 두 번째로 좋아하는 사람만을 사랑하면서 살게 될 거라고 생각한다.
또다른 여자. 여자가 동거중인 남자는 어떻게 손 쓸 수도 없을 만큼 형편없는 남자였다. 그래도 그녀는 그 남자가 없는 삶은 자신이 없다. 남자친구가 집을 나가겠다고 뛰쳐나가자 겁이 덜컥 났다.
역까지 따라가서 남자친구를 달래서 돌아오는 길. 골목에는 두 사람의 발소리와 남자친구 손에 매달린 비닐봉지가 바스락거리는 소리만 들리는데... 여자는 .. 남자친구가 어쩌다 가끔 대강대강 만들어주는 맛없는 볶음밥이 떠올라 눈물을 훔친다.
싸우고 화해하고 당연한 듯이 또 같은 장소로 돌아가는 연인들. 형편없지만 사랑하니까 그걸로 족하다.
사랑을 잃었을 때도 그녀들은 단 한 순간도 자기자신이 아닌 적이 없었다.
지독한 좌절과 안풀리는 사랑, 이별.. 이런 걸 통해서 존재가 더욱 도드라지는 어떤 여자들의 이야기.
소녀들은 모른다. 다 자란 여자들의 이야기다.
'어느 여자아이의 생일' 말고 '아픈 사랑'이라는 단편집도 좋다.
'호박과 마요네즈'는 아직도 품절상태.
Posted by nuncoo at December 3, 2005 02:03 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