젖은 신발

텔레비전을 켜놓고 잠든 밤에 꾸게되는 말도 안되는 연속극 같은 꿈에 비해
요즘에 꾸는 꿈은 줄거리는 없으나 상징적인 뭔가가 등장한다.
가령 며칠 전에는 신고있는 신발이 물에 잠기는 꿈을 꾸었다. 맑지도 않은 탁한 물이 발등까지 들어차 자칫하다가는 신발 안으로 물이 넘어들어올 상황이었다. 신발 속으로 물이 들어오면 어떡하나 걱정만 하다가 잠에서 깨었다.
꿈해몽 사이트에서 검색을 해보니 신발이 흙탕물로 더럽혀지는 꿈은 타인으로부터 수치를 당하는 꿈이라고 적혀있다. 꿈속에서 발등에 찰랑거리던 것이 흙탕물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았지만 그중 비슷한 예시이니 어디선가 몹시 부끄러운 꼴을 당하려나보다 생각하고 가벼이 넘기려했다.
그런데 그 다음부터는 내 꿈에 내가 발목이 잡힌 꼴이 되어버렸다.
러닝머신 위에서 뛸 때는 '넘어져서 창피를 당하려나보다' 싶고,
전화를 받을 때도 실수를 하지는 않을까 조심스럽고, 
운전을 할 때는 노란불만 보아도 가슴이 콩닥콩닥 뛰더니 가는 자리마다 내가 수치와 수모를 당할 자리같아서 당최 편한 곳이 없었다. 경거망동을 주의해서 나쁠 거야 없지만 이제와 생각해보니 그 꿈은 자신감없이 잔뜩 위축된 내 생활의 반영이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이제 그대들은 한낱 꿈에나 연연하는 나를 마음껏 비웃어주길.
탁한 물로 더럽혀진 신발이 타인으로부터 쏟아질 수치스러운 언사라면  .. 그 비웃음과 창피를 꿈이 예언한 만큼 ..그대들로부터 다 받고 내일부터는 부끄러운줄도 모른채 뻔뻔하게 활개치고 싶다.
지금보다 백배 더 뻔뻔해져도 날로 무성하게 자라나는 이 자괴감을 도저히 이길 도리가 없다.

in Diary 2005
Posted by nuncoo at December 20, 2005 02:19 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