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려라 아비

달려라, 아비 -김애란 (지은이) | 창비


말괄량이 삐삐같은 느낌에, 눈이 동그란 이 작가가 화제이긴 화제인가 보다. 홈플러스 영풍문고에서 다 팔리고 딱 한 권 남은 책을 내가 가져왔다. 여러 사람의 손을 탔는지, 언뜻 봐도 손때가 보이고 책갈피 사이엔 바람이 들어.. 표지가 들떠있었지만 알라딘의 950원 할인도 포기하고 서점으로 간 터였다.
빨리 사읽으라며 재촉하는 이도 있었고 요즘 왠지 '이런' 소설이 고팠다. 소설책 보느라 사전을 뒤져볼 필요도 없고 사건이 아니라 화자의 마음을 게으르게 따라가기만 하면되는 소설같은 거 말이다.


그런데 다 읽고나서 생각하게 되는 것은 의외로 '구성'이다. 이건 치밀한 계산과 구성하에 쓰여진 소설일까 아니면 우리가 블로그에 아버지 이야기를 쓰고 내 이야기를 쓰듯이 그것들이 하나씩 모이고 엮여서 하나의 독특한 구성을 가진 소설이 된 걸까.. 이런 거 말이다.  밖에서 생긴 교통사고와 여학생의 죽음, 그 순간 편의점 안에서 일어난 절도사건 (나는 편의점에 간다).  소설가가 되고자하는 청년의 방을 거대한 종이물고기로 형상화한 것 (종이물고기) 외에는 소설적인 구성이나 계산..같은 게 보이지 않는다.  
나를 두고 사라진 아버지에 대해, 나의 탄생에 대해, 서로 얼굴을 모르는 다섯 여자에 대해  1인칭인 내가 일기장에 쓰듯... 이야기할 뿐이다.
20대 중반, 읍사무소 소재지 정도의 지방에서 서울로 유학을 와서 자취를 하는 어느 휴학생의 블로그를 몰래 훔쳐보는 느낌이랄까.  카테고리는 가족 혹은 일상.
다 실화 같지만 아니어도 상관없는 누군가의 블로그.  그녀는 소소하고 비루한 일상도 아주 환상적으로, 때로는 마술적으로 표현하는 재능을 가졌다. 농담 잘하고 씩씩한 어머니처럼 명랑하고 웃기기도 하고, 예리하고 섬세하게 가다가도 어느 순간 영화 '집시의 시간'처럼 마술적이고 몽환적인 세계로 옮겨간다.
' 나는 결국 용서할 수 없어 상상한 것이 아닐까? ( 달려라 아비)' 라고 하지만 그녀는 자기자신을 연민하는 대신에 상상하는 법을 배웠는지 모른다. 그리고 나는 위악적이지도 않고, 시니컬하지도 않고 염세적이지도 않고 ... 발랄하게 우주를 무대로 노는 그녀의 상상력이 무척 부럽다.

웃기고, 애틋하고 동의를 백만표 보내고싶은 문장들이 많았지만 가장 웃겼던 건 그거. " 넌 인마! 문장이 안돼!  (누가 함부로 해변에서 불꽃놀이를 하는가)"   책을 읽은지 며칠이 지났는데 아직도 이 대사를 생각하면 잠자리에서도 킬킬거리며 웃는다.
그리고 " 그래도 내가 연애를 하면 작은 년이랑 하지, 큰 년이랑은 안한다. (달려라 아비)"  읽어본 사람은 안다. 이 한 마디에 모든 게 담겨있다. 
한 마디로 모든 걸 다 얘기하는.. 딱 내가 좋아하는 대사빨.



(더 할 얘기가 생각나지 않아서 어영부영 끝내려다가 )


-- 후에 나는 '종이물고기'를 읽고.. 그녀가 글을 쓰는 방식이 벽에 붙였던 포스트잇을 떼어내서 위치를 바꾸고 재배열하는 것과 같지 않을까 생각했다. 우선, 상관이 없을 것 같은 에피소드들을 하나씩 늘어놓는다. 이렇게 하면 서로 다른 이야기의 단락이 하나의 이야기로 연결되면서 기존의 줄거리 중심의 플롯과는 다른 묘한 맛을 낸다. 이게 그녀의 글쓰기, 구성의 방법이 아닐까.  그냥 내 추측이다. --

in 책읽기
Posted by nuncoo at January 14, 2006 06:12 P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