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ne 10, 2006
달콤한 연애소설- 나카타니 아키히로
[달콤한 연애소설]중에서 '이사 마니아'
그녀의 취미는 이사였다.
이사만큼 확실한 기분전환이 되는 게 없다고 했다.
이상한 여자였다.
나는 그 이상한 점에 끌려 그녀가 좋아졌다.
약도를 그려 달라고 해서 그녀의 아파트를 찾아갔다.
인터폰을 눌러도 대답이 없다.
"오겠다고 약속했는데."
손잡이를 돌리자 문이 열린다.
" 아니?"
벌써 이사한 뒤였다.
텅 빈 방안에는 전화기만 홀로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그밖에 남은 것이라곤 골판지 상자 한 개뿐.
닫힌 창에서 따뜻한 햇볕이 들어와 좋은 냄새가 난다.
이제 겨우 사귀기 시작했는데.
벌써 떠나 버린 것이다.
" 어머?"
그녀가 들어왔다.
"왔네?"
"벌써 이사 가 버린 줄 알았어."
"가게에 갔다 오는 거야."
"짐은?"
"거기 있잖아."
버려둔 것처럼 보인 상자에 든 게 가재도구의 전부였다.
"이것 뿐이야?"
"응."
"문이 잠겨있지 않던데?"
"문 같은 거 잠궈 두지 않아. 가져갈 것도 없는데 뭐!"
그건 그렇다.
"이사할 때마다 짐이 적어지거든."
그녀의 취미는 이사가 아니라 버리는 것이었다.
'이사 마니아'가 아니라 '버리기 마니아'였다.
"불편하지 않아?"
"아니 전혀."
그녈 보고 있으면 내가 얼마나 쓸데없는 것들을 많이 갖고 사는지 생각하게 된다.
" 이 정도면 이삿짐 나르는 사람들 쓸 필요도 없겠네?"
" 이사는 언제나 전철로 해."
그녀는 이 골판지 상자 한 개를 든 채 전철을 타고 이사한다.
우리는 따뜻한 햇볕을 받으며 사랑을 나눴다.
" 아무 것도 없으니까 방이 넓은데."
우리는 물건을 너무 많이 놓아 본래의 방 넓이를 잊어버리곤 한다.
싫은 게 있으면 이사하면 된다.
그렇게 생각했다.
우리는 서로 사랑했다.
그래도 난 그녈 이해할 수 없었다.
어느 날 그녀의 집에 갔더니, 언제나처럼 문이 열려있고 그녀는 없었다. 창이 열려 있었다.
나는 깜빡깜빡 졸았다.
창에서 시워난 바람이 불어와 커튼이 흔들렸다.
그때 난 알았다.
" 아, 이사했구나."
방은 평소와 다를 게 없었다.
골판지 상자는 아직 거기 있었다.
그녀는, 마침내 골판지 상자까지 버리고 이사해 버린 거였다.
" 그래도, 왜?"
우리는 행복했다.
내가 뭔가 잘못했을까? 이사를 해서라도 잊어 버려야할 기억이라곤 아무 것도 없었는데.
내 착각에 불과했다.
그녀는 행복해지면 이사하는 것이다.
행복에 집착해 생각이 구속되는 걸 피하려고.
행복조차도 짐으로 느끼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가장 큰 짐은 불행보다 행복인지도 모른다.
지금쯤, 그녀는......
창에서 기분 좋은 바람이 불어와 커튼이 흔들렸다.
도서관 서고 사이에서 들춰보다가 딱 한 편이 마음에 들어 대출을 했다.
요즘에는 사보나 사외보 라는 걸 구경해본 지가 오래되서 모르겠는데, 옛날 에는 화장품가게서 '향장'같은 잡지를 꼭 봉지에 담아주곤 했다.
책에 실려있는 28편의 짧은 연애소설도 그런 여성지에 실렸을 법한 연애에 관한 콩트다.
이런 말랑말랑한 글을 쓴 사람이 '20대에 하지 않으면 안될 50가지' '면접의 달인' 같은 책을 썼다니... 관심도 없던, 그런 책마저 '한 번 읽어볼까?' 하는 마음이 생긴다.
아, '달콤한 연애소설'이라는 이 책은 알라딘, 예스24,교보문고에는 없거나 품절이다. 인터파크, 반디북, 리브로에서는 주문이 가능한 모양. 하지만 웬만하면 도서관에서 빌려보거나 잠깐 들춰보길 권한다. :)
맨 마지막 작가의 말에... 작가는 이렇게 썼다.
' 글 머리는 작가가 쓰지만 결말은 신이 쓴다. - 나카타니 아키히로'
이 말... 왠지 멋져보여서. :)
Posted by nuncoo at June 10, 2006 09:32 P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