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ink Moon: 누더기가 되어버린 평화 '미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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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ch 20, 2004

누더기가 되어버린 평화 '미르'

[책갈피 속의 오늘] 1986년 2월 19일 - 러 우주정거장 ‘미르’ 발사 ‘푸른 지구’를 배경으로 우주의 바다에 떠 있는 미르(MIR)의 모습은 아름다웠다. 미르는 망망대해를 나는 한 마리 하얀 잠자리와도 같다. 날개 모양의 태양전지판과 여러 개의 모듈(소형 우주선)이 어우러져 빛나는 십자가 모양을 그리고 있다. 신(神)의 가호를 비는 지구인들의 ‘성호(聖號)’인가. 러시아의 제3세대 우주정거장 미르. 그것은 냉전의 산물이었다. 옛 소련 시절 우주개발은 원폭과 수폭 개발에 이은 또 다른 군비(軍備)경쟁이었고, 우주로 뻗친 이념대결이었다. 우주정거장 건설은 미국이 달을 선점(先占)한 데 대한 소련의 반격이었다. 암스트롱이 발을 디딘 ‘고요의 바다’는 지구 반쪽에 폭풍을 몰고 왔다. 과잉경쟁으로 소련은 초기 우주정거장인 ‘살류트 1호’의 우주비행사 3명을 잃었다. 질식사였다. 1986년 미르의 본체를 쏘아 올리기 직전 미국의 우주왕복선 챌린저호는 공중에서 폭발했다. 그런데도 이 우주기지는 ‘평화’를 뜻하는 미르로 명명됐다. “볼셰비키가 양키의 안방까지 쳐들어 왔다”고 미 전역을 들끓게 했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는 정작 ‘동반자’를 뜻한다. 냉전시대의 그 반어적(反語的) 레토릭이라니! 미르는 수명이 다할 때까지 지구를 8만여회 돌았다. 100명이 넘는 우주인들이 미르에서 1만6500건에 달하는 무중력 과학실험을 행했다. 사상 처음 우주에서 밀의 싹을 틔웠고 도롱뇽 메추라기의 생태변화를 지켜봤다. 그러나 연간 2억5000만달러에 달하는 운영비용은 러시아에 벅찼다. 논란 끝에 폐기결정이 내려진다. 미르는 옛 소련의 자존심을 세워준 상징이었다. 그리고 또 역설적이게도, 빈번한 고장과 사고로 누더기가 돼 버린 미르의 ‘만년(晩年)’은 갈가리 찢긴 옛 소련의 오늘이기도 했다. 2001년 3월 미르는 마침내 태평양에 수장(水葬)된다. 불이 붙은 미르의 파편들이 긴 오렌지색 꼬리를 달고 피지 섬의 하늘을 수놓았다. 불타는 미르의 마지막 눈동자를 지켜보던 러시아 우주국 책임자 코프테프는 이렇게 뱉었다. “그 어느 것도 영원할 수 없구나….” 동아일보 2004년 2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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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nuncoo at March 20, 2004 07:35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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