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gust 15, 2004
오빠는 무슨!
1.
낮에 파리의 연인 재방송을 보다가 .
기주: 아니.. 근데 언제까지 한사장, 한사장 할꺼야?
태영: 아니, 그럼 뭐라고 불러요?
기주: 나이도 한참 어리고 쬐그만 게 오빠라 그래.
태영: 어우~ 그럼 닭살 돋게. 오빠?
기주: 아니다. 하지마.
태영: 아니, 하래놓고 하지 말라는 건 뭐예요. 해 볼래요. 오빠!
기주: 이상해. 하지마.
태영: 아니, 왜 못하게 하냐.... 오빠. 
2.
중학교3학년 때였나? 동네 오빠와 사귄 적이 있었는데 ( 그땐 사귄다고 생각했었으니까)
우리 아버지는 남자랑 말만 해도 큰 일 나는 줄 아는 분이었던지라 이성교제는 꿈도 못 꿀 일이었던 거라.
그런데 어느 날은 내가 교회에도 통 나오지 않고 쪽지도 뜸해지자 나랑 모종의 교감이 있었던 이 오빠,
걱정스러운 마음에 우리 집엘 찾아왔는데, 온 사람 내칠수도 없는 노릇이라 안들키게 몰래 내 방에 앉혀놓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쑥스러운 분위기를 누그러뜨리고 있는데 밖에서 들리는 아버지의 목소리.
" 누구? 누가 왔다구?"
빈 집에서 허공에 대고 방백하지 않는 한 그것은 분명 나 들으라고 하시는 소리였는데 해석해보면
" **야, 니 방에서 남자 목소리가 들리는데 어떤 놈이냐?"
이런 말에 다름 아니었던 거라.
아버지에게 '남자'라는 이성과 같이 있는 모습을 처음 보이는 상황이라 당황한 나는 " 이 오빠는요.."
그 오빠는 " 안녕하세요 저는.."
몹시도 허둥대며 두 사람의 말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얽히고 겹쳐서 ..제대로 매듭도 짓지 못한채
가뜩이나 살벌한 분위기를 더 아찔하게 만들었는데.
우리 아버지, 그 오빠한테는 본척도 않고 내 얼굴만 모로 돌아보며 말씀하시는거라.
"오빠는 무슨! 니가 오빠가 어딨어?"
딸만 넷에 아들이래봐야 막내 하나뿐이었으니 그 말은 그 자체로도 맞는 말이었으나
결국은 둘이 좋아라 어울릴 생각은 꿈도 꾸지 말라는 풍유에 가까웠으니 그후로 나는 어린 딸의 풋풋한 정을 이해 못하는
아버지에 대한 반항심으로 괴로운 사춘기를 보내야만 했단 말이지.
3.
말 많고 살가운 모녀간은 아니었으나 30여년 동안 해준 숱한 말 중에 다른 말은 다 잊고
"오빠는 무슨, 니가 오빠가 어딨어?"
이 말만 똑똑하게 기억하는 걸 안다면 우리 아버지도 몹시 서운하시겠지만
아버지의 그 말씀은 나의 예민했던 사춘기를 지배했던 지라
충격이 커서 세뇌가 되었는지 어쨌는지 '오빠'는 나의 금기어가 되고.
성년이 된 후에도 나는 오빠를 오빠라 하지 못하고,
나보다 나이 많은 남자는 모조리 뭉뚱그려 선배 아니면 누구누구씨로 통칭되었으며
한때 사귀었던 사람들조차 살가운 '오빠' 소리 한번 못듣고 '어이~'나 ... '있잖아'... '저기' 로 호칭도 없이
나의 뿌리깊은 '오빠기피증'에 굴복해야만 했는데.
3.
지금 돌아보니 좋아하는 사람한테 '오빠, 오빠' 하며 앵앵거려 보지도 못하고 좋은 세월 다 갔다는 생각도 드네.
Posted by nuncoo at August 15, 2004 11:45 PM
링크 때문에 이거 열었다가 괜히 아버지 생각나서 맘만 아프네.
아버지, 엊그제 꿈엔 왜 나타난 건데?
아버지 모습만 선명하고 꿈 내용이 생각나질 않아...
이거 클릭해서 아버지 생각나게 하려고 왔던 거였나.
전 늘 뭐라고 불러도 다 못부른 거 같고, 뭐라고 불리어도 다 못불리운 것 같던데...
Posted by: 따위 at August 16, 2004 06:26 PM아, 이런 사연들때문에 나이많은 남자들을 어정쩡하게 부르는 여성들이 있는거군요. '어빠'라고 부르기로 하면 쬐끔 쉬울걸요? ^^
Posted by: 만박 at August 16, 2004 07:01 AM제가 휴학하고 군대 가기 전에는...
어떤 여자후배도 다 나를...
00선배, 00형이라고 불렀지요...
그게 뭐...남녀가 평등하다는 것을...
의식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행동이었는지...
그 깊은 뜻이야 잘 모르겠지만...
여하튼...저도 '선배''형'이란 호칭에...
길들여지게 되었지요...
근데 복학을 하고...
학생회실에서 노닥거리고 있는데...
어떤 여자 신입생이 절 보더니...
"오빠!"하는 겁니다...
저는 기겁을 해서...
"내가 왜 니 오빠냐? 니가 내 여동생이야?"
저를 세상에서 '오빠'라 부를 수 있는...
존재는 세상에 하나 뿐인 여동생이라...
철썩같이 믿고 있었던 저로선...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는 호칭이었지요...
근데 일개 범인 주제에...
큰 물결을 틀어막을 힘이 있을 리 없으니...
그 뒤로는 소나 개나 오빠라 부르고...
언젠가부터는 '형' '선배' 하는 소리가..
오히려 거슬르게 되었다는...
오빠에 대한 추억..재밌다. 언니. 나역쉬 딸다섯에 둘째였는데 앵앵거리며 오빠란 단어를 꺼내면, 자매들에게 거의 이지매 당하는 쏴한 분위기였쥐. 그래서 내내 오빠란 말을 꺼내보지도 못하다가 운좋게..결혼한 남자에겐 "오빠"라 하고 있음. 흐흐 그때 내가 "우리 오빠는.."하고 소개할때, 가족들의 그 싸늘한 눈초리란...!!! 정말 잊을수 없었어.ㅋ 언니나 나나 집안분위기 비슷하고 정서 비슷해주고..웃겨..ㅎㅎㅎㅎㅎ
나는 좀처럼 주변 남자들에게
'오빠'라는 호칭을 쓰지않는다.
'오빠'라는 단어를 떠올릴 때마다
나의 뇌리를 스치는 연상작용 때문이랄까.
어쩌면.. ,
그 혹독하기만 했던 '질풍노도의 시기'에
친오빠로부터 받았던 언어적인 폭력,
그 기억에 대한 암울함 때문일 것이다.
그가 내게 자행했던 몇 건의 사건들도 인해,
나는 외모에 대한 심한 콤플렉스를 갖게됐다.
10대들 사이에서 '롱다리'가 최고의 덕목으로
간주되던 시절, 그는 걸핏하면
"넌 하체가 상체의 5분의 1이야"라는 말을 즐겨썼고,
뽀얗고 통통했던 내 얼굴을 칭찬하기 보단,
"너 그거 알어? 너 지금보니 4등신이다, 4등신!"..
이라며 비수를 던졌다.
게다가, 소위 글래머로 불려지는 여인들을 볼 때마다
내심 위압감과 심한 열등감에 시달려야 했던 내게
"대체 넌 어디가 앞이야?"라며
스스로 혼란스러워하는 모습을 보이기까지 했다.
그 뒤로 내 머릿속에 각인된 '오빠'라는 존재는
'같은 말을 해도 꼭 기분 나쁘게 하는
재주를 가진 사람', 혹은
'결코 드러내고 싶지 않은 내 치부만을 아주 정확히,
예리하게 콕,콕 집어내는 선수'로 간주된다.
그리고 세월이 조금 흘렀을까.
평소 알고지낸 지인으로부터 한 남자를 소개받았고,
우리는 제법 친한 사이로 발전할 수 있었다.
하지만 우리의 사랑은 오래가지 못했다.
이유인즉, 그가 하는 모든 제안을
내가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이라나.
그 중에 결정적인 것,
그가 유독 강조했던 제안은 이러했다.
"제발 좀 오빠라고 불러봐라 쫌.
자꾸 오빠, 오빠하면, 된다잖어..
오빠라고 안부르면 나 너랑 헤어진다?!"
..문딩이, 지금 어디서 무얼 하며 살고있을까나..
ㅋㅋ 이제부터 호부호형을 허하노라^^
저와는 조금 다른 상황이군요~
오빠만 둘인 나는 대학에 들어가 선배들을 오빠라 부르지 못하고 형이라 부르다가 집에와서 친 오빠에게도 습관대로 형이라 했다가 혼났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