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ink Moon: 뒷북-Lost in Transl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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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ptember 06, 2004

뒷북-Lost in Translation

10여년 전쯤에 알았던 그 남자. 마지막 만나던 날.
'이게 마지막 저녁 식사야. 우리가 함께 하는'
끓고 있는 부대찌개에서 라면 면발을 골라내며 내가 하는 말을 알아듣지 못하고 땀을 뻘뻘 흘리며 국물만 들이키던 그 남자.
나와 헤어지고 그 남자는 PC통신 게시판 어딘가에 이렇게 적어놓았었다.
'마음의 상처가 있는 사람은 가끔 자신의 과거를 묻지 않는 곳에서 생활 할 필요가 있는 것
같아'
내가 그에게 상처였는지 그가 택한 마음의 망명지가 어디였는지는 모르지만 10여년이 지
난 후에도 이렇다 할 추억도 없는 그를 선명하게 기억하는 건, 바로 저 한 줄의 문장 때문이다.
상황종료를 알리는 문장 속에서 비로소 소통하다니 ...
돌아보니 ... 우리는 둘 다 저 한 문장을 얻기 위해.. 혹은 체감하기 위해 잠깐 맺어진 인연이
었는지도.




낯선 동양의 나라 한복판에 던져진 밥 해리스(빌 머레이)와 샬롯( 스칼렛 오한슨)도 여러가
지 형태의 소통불능을 경험한다.
(많은 것들이 불통의 증거로 등장한다.
힘들다고 국제전화를 한 샬롯에게 그녀의 친구는
엉뚱한 소리나 해대고, CF감독은 외국어로 오버하고, 병원 복도에서 만난 노인은 알지못할 소리를 하고, TV토크쇼의 MC는 호들갑스럽고, 미국에 있는 부인은 '곧 나가봐야한다'는 소리만 하고, 사진작가인 남편은 수다스럽게 바쁜 일과만 늘어놓는다)
허나 영화 보는 내내 나도 그들과 섞이지 못하고 바깥만을 겉돌았다.
기이한 공룡을 보듯 동양을 보는 그들의 시선에 대한 불편함도 있었을 거고 (난 일본 사람
도 아니면서 )
뭔가 그래도 강한 임팩트 하나쯤은 있지 않을까 기다렸는데.. 밥 해리스의 알
아듣지 못할 귓속말만 움켜쥔채
나는 그대로 영화밖으로 떠밀려났다. 이것이야 말로 Lost
in Translation..


















이미지출처: 구글 이미지 검색 (--;;)

그리고 빌 머레이 아저씨가 가라오케에서 불렀던 노래.
O.S.T에는 수록되지 않았다. (More Than This-Roxy Music)





소통이나 불통에 관한 메타포를 지워버리고 내 맘대로 오역하자고 작정을 하고보니
영화 Before Sunrise와 오래 전에 씨네21에서 홍상수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 아침에 회사를 가다가 예쁜 여자를 만났다 치자.
점심 시간엔 그 여자와 같은 식당에서 밥을 먹었고 저녁에 지하철에서 여자를 또 봤다면 집
에서 혼자 곰곰히 생각하겠지. 이게 무슨 운명인가 하고.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잊어먹고
사실 아무 것도 아니었음이 판명된다. 그런 거다 "


*그나저나 빌 머레이 아저씨 늙은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하기야 사랑의 블랙홀이 10년도 더 된 영화니까.
아주 근사하게, 멋지게 늙어서 뭉클하기까지 했다.




in Culture
Posted by nuncoo at September 6, 2004 01:58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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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뒤늦게 이곳을 보았습니다.
같은 영화를 봤는데, 어쩌면 이렇게 이해하는 방식이 서로 다른지요.
저요? 묻지마세요. 흐흣, 가볍기 그지 없는 그저 모양만 '감상평'인 글 하나

Posted by: 문혁상 at October 22, 2004 03:51 AM

쫑은- 나는 아이로봇과 킹 아더..그런 영화를 연이어 보다보니 도대체가 아무런 감흥이 일지 않아서
어디 마음 둘 영화 없나 싶어^^;; 고른 것이 이 영화였는데
모든 것이 조금 더 구체적이었더라면..하는 생각이 들더군.
펑펑 운 사람은 그 나름의 이유가 또 있었겠지.

여기 자주 안와도
거의 매일 얼굴 보니.. 그게 더 좋다.

Posted by: nuncoo at September 20, 2004 01:31 AM

84년생 '스칼렛 요한'의 가능성이 엿보였던 영화죠.
코폴라의 딸이 연출했다는 이유만으로,
플러스 알파 점수를 받았던 영화는 아니었는지...
전 중간과 좋음 그 사이였는데,
제가 아는 언니는 이 영화 보고 펑펑 울었대요.
역시, 영화보는 관점은 상당한 개인차가 있는 듯.

덧붙이는 말...
원고 쓰다, 정말 올만에 언니 홈피 놀러왔는데,
확실히, 예전 싸이만큼은 자주 못 오는 거,
이해해주시길... ㅠㅠ

Posted by: 쫑은 at September 19, 2004 05:25 AM

푸헤.
나한테 따져 묻는다는..
"그 말이 하고 싶었던 거야? 엿.. 그 말을 못해 안달났던 거야?"
음.. 그렇다고 하는군요 ^^;;;;

Posted by: nuncoo at September 6, 2004 11:30 AM

언젠가 봐야지...
언젠가 봐야지...
그렇게 묵혀둔 영화 리스트 중 하나...

Posted by: 걸식이 at September 6, 2004 08:55 AM

" 아침에 회사를 가다가 예쁜 여자를 만났다 치자.
점심 시간엔 그 옂와 같은 식당에서 밥을 먹었고...
이 오타는 왠지 무의식 속의 정타로 느껴지는데...
평소 회사 옆 식당에 대한 불만이 표출된...

그 엿 같은 식당...


Posted by: 걸식이 at September 6, 2004 08:50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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