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ink Moon: 친절한 금자씨
 








Syndicate this site (XML)

July 28, 2005

친절한 금자씨

금자씨가 두부인지, 케익인지 하는 그 하얗고 순결한 것에 얼굴을 박고 뭔가 잠언 같은 대사를 읊을 때. '이제 끝났구나' 싶어 아주 일찍 자리에서 일어났다. 

" 거봐, 재미없을 거라고 했잖아" 
등에 어떤 목소리가 달라붙었다.
극장 안에 불이 들어오기도 전에 저렇게 단호하게 내뱉기는 쉽지않은데.... 뒤를 돌아보았다. 극중에서 금자씨에게 "이제 해도 돼요" 라고 말하며 벌렁 드러눕던 청년 또래쯤 되는 남학생 둘이 내 뒤를 따라 내려오고 있었다.
'거봐, 재미없을 거라고 했잖아' 라고 단호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둘 중에 하나일 거라고 생각했다.
이전에 박찬욱 감독의 영화에 크게 놀라거나 감화받은 적이 없는 사람이거나 극장에 왔다가 시간이 맞는 영화가 그것 밖에 없어서 '친절한 금자씨'를 택한 사람.
일부러 시간을 내서 예매를 하고, '영화나 보자'가 아니라 박찬욱의 '친절한 금자씨를 보자'는 마음으로 온 사람이라면  '거봐, 재미없을 거라고 했잖아'라고 쉽게 말하지 못했을 것이다. 뭔가 부족하고, 뭔가 미흡하다 싶지만 곰곰히 생각하다 보면 내가 발견하지 못했던 장점이나 미덕을 깨닫게 되지 않을까...차마 입을 열지못하고 조용히 극장을 빠져나왔을 것이다. 나처럼.
allblog.net에서 영화를 본 이들의 리뷰를 몇 개 찾아봤더니 거한 상찬은 아닐지라도 찬사가 압도적이라... 내가 느낀 답답함을 나눌 이가 없어 조금 소외감을 느꼈다. 하여 백선생처럼 " 세상엔 완벽한 게 없어요" "완벽한 영화도 없어요" 혼자 중얼거릴 수 밖에.

1. 영화는 웃기다. 마지막의 동화구연 같은 통역도, 성우 김세원씨의 단정한 해설도, 금자씨가 툭툭 내뱉는 대사도 웃기고.. 모두 정확하게 계산된 웃음이다. 하지만 관객들은 오로지 웃기 위해 박찬욱감독의 영화를 보러가진 않는다.
영화 마케팅의 초점은 박찬욱감독의 복수시리즈의 완결편이라는 것과 배우 이영애의 변신에 맞춰지는 듯 한데 (실제 어떤 기사를 보니 '이 영화의 남자주인공은 박찬욱이 아닐까'라고 써놨더라.)  복수시리즈의 완결편이라고 하기에는 마무리가 너무 쉽고, 그냥 어떤 명망가가 피날레를 위해 힘 빼고 만든 영화? 아니면 그간의 업적을 기리며 연 세련되고 화려한 자축연 같은 느낌이다.
'대한민국 감독은 이영애와 작업해 본 감독과 안해본 감독으로 나뉜다'는 박찬욱감독의 말도 좀 오버다 싶고,  이영애의 연기야 기대이상이었지만 배우의 변신이라는 것도 영화의 결과물이어야지 그게 목적일 수는 없지 싶다.

'올드보이'에 놀랐던 건, 상처를 얘기하는 그 방법 때문이었다. 올드보이는 복수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상처에 대한 이야기였다. 함부로 입 놀린 어떤 자 때문에 온통 인생이 헝클어진 어떤 남자의 복수, 혹은 상처에 대한 이야기. 허나 금자씨는 뭘 위해 복수를 하나. 구원이나 속죄 같은 건.. 심연을 건드리기엔 너무 붕 뜬 이야기다.

2.인터뷰(한겨레)에서 김소영 교수는 친절한 금자씨를 두고, 디자인, 세트면에서는 웰메이드라고 했다. 맞는 얘기다. 포스터,음악, 편집 다 좋고, 특히 미용실을 개조한 금자씨의 방, 고운 빛깔의 감방 벽은 친절하고 따뜻해 보였다. " 예뻐야 돼. 예쁜 게 좋아"

3.후반부 금자씨가 그간에 살해된 어린이들의 모습을 담은 비디오테잎을 틀면서 영화는 변한다. 금자씨가 변하는 게 아니라 영화가 먼저 변하고 금자씨도 변한다.
이 부분은 박찬욱 감독이 '그간 만든 영화들 중에서 가장 잘 만들었다고 생각한다(nkino)'는 바로 그 부분이다. 그러나 나는 이 부분 때문에 김이 빠졌다.
인간은 누구나 실수를 할 때가 있고, 말 한번 잘 못하는 바람에 15년을 갇혀지내야 했던 오대수라는 사람도 있었지만 아이를 납치해서 잔인한 방법으로 살해한 것은 실수가 아니다. 감옥에 갇힌 13년 동안 친절한 금자씨가 되어 치밀하게 복수를 결심하고 실행하는 금자씨는 신선하지만 부모들의 복수극은 뻔한 얘기다.
금자가 테잎을 트는 순간부터 백선생은 모두가 인정하는 공공의 악이자 극형에 처할 범죄자가 되어버리고 명백한 죄를 지은 범죄자와 그를 사적인 방법으로 처벌하려는 명백한 피해자들의 얘기로 영화가 흘러가면서 영화에는 도덕적이고 상투적이라는 누명이 씌워진다.
사적인 처단에 앞서 벌어지는 그들의 불안한 심리에 대한 긴긴 장면은 꽤 흥미롭지만 그들이 칼을 드는 게 인간 내면에 숨겨진 잔인한 본능 이라고 우기는 건 말이 되지않는다. 자기 자식이 죽어가는 장면을 본 부모라면 칼이 아니라 도끼라도 들 수 있다. 그것은 단죄라고 하지 숨겨진 잔인한 본능 때문이라고는 하지 않는다. 게다가 음침한 기운을 내뿜으며 복수의 날을 갈던 금자씨는 왜 갑자기 자기가 수사반장이라도 된 것처럼 구는지. 그녀에게 묻고 싶었다. " 얘, 왜 이렇게 변했니?"
글쎄, 금자씨가 끝까지 복수의 주체로 남았거나 아니면 나름대로 일부는 피해자기이도 한 금자씨가 잔인한 본능이나 광기에 잠시 눈이 돌아간 부모들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면, .. 하얀 눈밭에 선혈이 낭자한채 누워 "사람들은 누구나 실수를 해. 하지만 죄를 지었으면 속죄해야 되는 거야. 속죄" 하고 뇌까렸다면 그나마 도덕적이고 상투적이라는 느낌은 들지 않지 않았을까?


4. 연극의 한 장면 같았던 피해어린이 부모님들의 회의씬-그리고 일을 치른후 케익을 나눠먹고.. 눈이 온다며 밖으로 나가던 장면에서 눈에 띄는 배우 하나를 발견했다. 오광록. 올드보이에서 옥상에서 자살하려던 그 남자다.


5. 멋있었던 장면. 제니를 납치한 신하균을 추격하던 장면.
총을 겨누고 달리는 금자씨의 각잡힌 자세. 가로등 불빛에 드러난 담벼락의 음영. 그리고 나레이션이 절묘했다. '긴박한 상황에서도 금자씨는 자신이 가진 총의 유효사정거리를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6. 수많은 카메오 중에 강혜정과 류승완 감독을 못찾았다.
강혜정은 영화 시작할 때 나왔다고 한다. 오늘도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초반 7,8분을 못봤다.

7. 이 영화는 대체 홍보에 돈을 얼마나 썼는지 궁금하다. 어딜 보나 다 이영애와 박찬욱 감독 얘기뿐. 때마침 베니스까지 간다니 더이상 돈 쓸 일은 없으려나.

8. 중얼중얼 떠들다보니 금자씨 대사가 들린다. " 너나 잘하세요"
나나 잘하자.

 

in Culture
Posted by nuncoo at July 28, 2005 11:53 PM


TrackBack
TrackBack URL for this entry:


Comments

review 잘 읽었습니다.
전 영화보는 내내 감독이 이제 스스로하고 싶은 것을 스스로의 힘으로 눈치 보지 않고 하는구나, 영화가 이끄는데로 즐기자. 라고 짧게 생각했답니다.
덕분에 즐거운 '영화감상'이 남고, 꼼꼼히 따져볼만한 북마크는 좌석에 놓고 극장에서 나온 거 같아요.

Posted by: jhin. at August 2, 2005 01:52 AM

lunamoth-본 이들의 말대로라면, 언제 나오는지 알고봤어도 놓쳤을 것 같네요.


허니맘-간만에 극장 간 거라... 내가 엄청 기대에 부풀었었나 보아. 스타일은 엄청 근사하니 극장에서 보는 것이 좋을 듯.:)

쫑- 나.. 구경 갈까? :)


Posted by: nuncooo at August 1, 2005 01:37 AM

강혜정은 앞부분 극악무도한 유괴범 '이금자'를 보도하던 아나운서로 나왔고, 류승완 감독은 고딩인 금자가 자기 임신했다며 전화할 때 수족관 앞을 지나가던 행인으로 나왔었어요. ㅋㅋ
월요일 우리 프로에 박찬욱 감독 나오거든요.
청취자 전화로 '감독과의 대화의 시간'을 가질 예정이에요. 친절한 금자씨를 비롯해 박찬욱 감독 영화에 대해 궁금했던 점들...질문해주세요. ^^

Posted by: 쫑은 at July 31, 2005 01:41 AM

그래도 백설기같은 이영애를 함 스크린에서 보고싶긴한데? 언니글보니..땡기진 않지만 말야~!

Posted by: honeymom at July 30, 2005 01:47 AM

3. 갑자기 금자씨의 톤이 달라지는 것 같기도 했습니다. 후반부를 위한 과정이었겠지만 생경함은 있더군요. / 류승완 감독은 정말 눈깜짝할 순간이더군요 ;)

Posted by: lunamoth at July 29, 2005 02:28 PM
Post a comment



이름 혹은 닉네임과
이메일 주소는 필수입니다.







Remember personal info?
( 'Yes'를 클릭해두시면 올 때마다 이름과 URL을
입력하지 않아도 됩니다 )



이 숫자는 스팸코멘트를 방지하기 위한 것이니
번거롭더라도 빈 칸에 그대로 옮겨적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