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ink Moon: '좋은 일 같은 거 없어도 좋아' -카페 뤼미에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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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vember 13, 2005

'좋은 일 같은 거 없어도 좋아' -카페 뤼미에르


운전을 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반대차선에서 오고 있는 운전자와 옆얼굴을 마주 대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 정면만을 응시하며 시야를 좁혀봐도 어쩔 수 없이 서로가 서로의 가시권에 속할 수밖에 없는 순간.
양방향으로 막히는 도로 위의 1차선이란 그런 자리다.

브레이크등만이 빨갛게 발열하는 저녁의 혜화동 거리에서 그렇게 많은 옆얼굴을 스쳐보냈다. 어디로 가니? 그렇게 초조한 얼굴들을 하고 향하는 너희들의 행선지는 얼마나 따뜻할까?


공연한 눈마주침이 싫어 창을 닫고 달리다가 어느 일순간, 나는 문득 네 개의 창문을 모두 내려버린다.
고작 차창 따위를 열면서 나는 왜 그리 전투적이었을까? 울컥하는 저녁공기가 차 안에 싸아하다.


사거리, 신호등, 여전한 옆얼굴. 바람소리를 내며 차들이 지나가고 수백 년 동안 서서히 식어 결빙의 직전에 다다른듯한 시린 공기가 양볼을 탱탱하게 얼린다. 살아있다는 서늘한 감각.

원래 그런 것인가. 생의 감각은 언제나 고독하고 외로운 순간에 가장 생생하다.  사람들에 둘러싸여 흥청거릴 땐 삶이 이렇게 절실한 것이라는 걸 잊었지. 11월 저문 저녁길에 나서보니 시간은 차갑게 앞서가고 돌아보니 뭣도 모르고 까불면서 나는 참 오래도 살았다.  이제는 따뜻하게 데운 우유병 밑바닥에 침전물처럼 내려앉아 고요해져도 좋을 텐데.  요코처럼 불안을 발설하지 않고, 철없이 들뜨지도 말고, 요코의 말 없는 아버지처럼 삶에 따지지도 않고, 하지메처럼 세상에 귀를 가리고 오고 가는 기차소리나 들으면서... 어떠한 물결도 파도도 경험해보지 못한 것처럼 고요하게, 내색하지 않으며 담담하게 ..., 좋은 일 같은 거 없어도 좋아. 그렇게 아득하게 한 세월...


백발이 된 어느 날 누군가가 나의 지난날을 물어오면 장웬예의 미망인처럼  "팬지라고 불렀지요. 내 얼굴이 동그랗다고."  이렇게 기쁨과 외로움이 하나가 된 표정으로 담담하게 얘기할 날도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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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페 뤼미에르>의 또다른 제목인 ‘가배시광 珈琲時光’은 '커피와 함께 햇빛을 나누다' ' 커피와 함께 흘러가는 시간' 이렇게들 해석을 하는 모양인데  극장에서 집어온 종이에는  '마음을 안정시키고 앞으로의 일을 준비하기 위한 평온한 한 때’를 의미한다고 쓰여있다. 
들끓던 격정이 비로소 추억이 되는 어느 한 때.. 그 담담한 평화가 느껴진다.
'화양연화'가 그랬듯이 참 마음에 와닿는 제목이다.




:: 요즘처럼 잔뜩 날이 서 있는 나에게 꼭 필요한 영화였다. 요코의 시골집 식탁에서 정종을 마시는 아버지 옆에 말없이 오래 앉아있다 오고싶다. 아니면 요코처럼 마루 바닥에 곤한 몸을 눕히고 깊은 잠에 빠져도 좋겠다.
가배시광... 따뜻한 우유 한 잔의 온기가 아주 오래 갈 것 같다.




:: 마지막에 방점처럼 찍히던 노래 ' 一心案 (HITO SIAN) ' 이 노래를 다시 듣고 싶은데, O.S.T는 없나보다. mp3 파일도 찾지 못했다.   대신 번역된 가사는 찾았다.




一心案 (HITO SIAN)            -   히토토 요 


개를 기른 이유는
환생이라고 생각하고픈 소녀의 소꿉장난 같은 놀이


햇볕에 연지 색으로 변한 너무 큰 샌들과
엄마가 끼얹은 물에 젖은 비키니가 너무 화려해


언제부턴가 익숙해진 나선형 계단
겹겹으로 쌓인 구름도 그대로 있네


백지 지도를 메우고 싶었는데
고토토이 다리에 첫사랑을 빠트려버린 소녀


어른스런 표정으로
돌아봐
결실도 맺지 못하는 땀이
이제 겨우 서향 꽃을 피운다
이 세상에 태어나서 행복해


흔들리는 사이로 언뜻 보이는 푸른 빛
흘러가버린 게 누구였더라
기쁨과 외로움이 하나가 되는
집으로 가는 길에 생각에 잠긴다.


나를 지켜준 아버지를 대신한 어제라는 날이
한 꺼풀, 한 꺼풀 벗겨진다.
당신 앞에서


상처 받기 쉬운 나이지만
언제 이뤄질지도 모르는 꿈

좋은 일 같은 거 없어도 좋아
있으면 좋겠지만


흔들리는 사이로 언뜻 보이는 푸른 빛
흘러가버린 게 누구였더라
기쁨과 외로움이 하나가 되는
집으로 가는 길에 생각에 잠긴다.





:: 가사출처: 네이버 '카페 뤼미에르 카페'  


 

:: 지금 CGV상암, 하이퍼텍 나다에서 영화를 보면 수첩처럼 묶인 메모지를 준다. 속지는 원고지처럼 생겼다.





in Culture
Posted by nuncoo at November 13, 2005 12:02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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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iSLANd - 아주 짧게 '카페 뤼미에르'가 등장한 글을 본 것도 같은데..
가만있자, 그게 어디 있었더라 .. --a
(귀달린 이모티콘 처음 써봤네요. 재미있다. 자주 써먹어야지 )


익살- 요아래 jhin님이 주신 정보에 의하면 상암CGV에서는 내렸나보네요. 나다로 가심이... 거기도 확신할순 없지만. --a


jhin- 나다에서만 하는 줄 알고있었던 저로선 다행이네요. --a
아버지한텐 정종이 더 아버지스럽잖아요 :)

수첩의 과잉 - 지금 눈에 들어오는 것만 해도 '카페 뤼미에르' '스타벅스' ' 브리티쉬박물관 한국전' '뉴욕의 나비' ..... --a
이젠 돈 주고는 안사야지.


쫑- 나도 영화 덕분에 모났던 데가 둥글둥글 푹 익혀진 느낌.
외롭고 심란한 날에 골라 봐라.
마냥 좋은 날에 봤다면 느낌이 달랐을 것 같아.
덧. 같이 봤으면 좋았을 걸 --a

Posted by: nuncooo at November 14, 2005 03:22 AM

언니 글이야말로,
잔뜩 날이 서 있는 저를 포근하게 해준답니다.^^
이 영화, 꼭 보고 싶은데...

Posted by: at November 14, 2005 02:25 AM

봤어요 오늘. 오늘 새벽 이 글을 읽고 게으른 휴일을 오래간만에 접어 버렸네요 :)

상암CGV는 종여되어서 (가까운데...) 먼 길 돌아 나다까지 가서 보고 왔어요. 물론 수첩을 주더군요. 수첩의 과잉인데...

끝나는 장면에 다달아서 그러한지, 5개의 다른 행선지를 가진 전차들이 교차되어 지나가는 장면이 가장 기억에 남고 있어요. 몇 초 후 지나간 6번째 전차의 오래된 붉은 색도.

아버지는 시골에서 맥주를 드셨고, 동경의 딸네 집에서는 옆집에서 빌려온 정종을 드시더라구요. :)

좋은 영화 알게 되어 감사드립니다.

Posted by: jhin. at November 13, 2005 10:23 PM

마음에 드는 제목의 영화네요 ^^;
글을 보고 궁금해져서 네이버에서 찾아서 스토리를 봤더니 고립감을 느끼는 요코가 어떻게 표현되었을지 궁금하네요. 꼭 봐야겠어요 ^^;;

Posted by: 익살 at November 13, 2005 03:51 PM

상암에서 보셨나보네요. ^^
저도 며칠 전에 상암에서 보고 수첩 두 개(!) 받아왔거든요.

영화 보고 나서 몇 자 적어둔 게 있는데... 가만있자, 그게 어디 있나... ㅡㅡa

Posted by: iSLANd at November 13, 2005 01:37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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