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성역"
내가 지금 죽어 하늘의 심판대에 서서 이제껏 지상에서 지은 죄를 모두 고백해야 한다면, 무수한 죄 중에 제일 먼저 " 저는 누군가의 '마음의 성역' 을 침범한 적이 있습니다." 라고 말할 것이다.
마음의 성역(Sanctity of the human heart)이라는 말은 19세기 미국 작가 호손(Narthaniel Hawthorne, 1804-1864)이 그의 대표작 주홍글씨 <<The Scarlet Letter, 1850>>에서 쓴 말이다. 


"애지 욕기생 (愛之, 欲其生)" -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이 살게끔 하는 것이다 - 논어 12권 10장-


"모르는 사이에 다른 사람의 영혼을 구한 일" -로버트 브라우닝의 '피파가 지나간다' 이야기를 하면서.


"지켜보는 가운데"-  현재는 문학사적 위치가 남편의 명성에 가려졌지만 당시만해도 워즈워스의 뒤를 이를 시인으로 꼽혔던 엘리자베스 배릿 브라우닝은 여섯 살 연하의 로버트 브라우닝의 끈질긴 구애 끝에  그와 결혼을 한다. 그들이 결혼할 때까지 나눈 연서만 해도 두꺼운 책 두권에 달한다. 그러나 딸의 죽음을 준비하고 있던 엘리자베스의 아버지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혀 두 연인은 친구 한명과 하녀만이 참석한 가운데 비밀 결혼식을 올리고 기후가 따뜻한 이탈리아로 떠난다. 그곳에서 브라우닝 부부는 활발한 작품활동을 했으며 훨씬 이전에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았던 배릿은 그후로도 15년 동안 행복한 결혼생활을 한 후 남편이 지켜보는 가운데 눈을 감았다.
- '지켜보는 가운데' 이 말이 왜 마음에 와 닿았나 모르겠다. 괜히 이 말이 마음에 울려 자꾸 소리내어 발음해보았다. 행복한 말이다. '지켜보는 가운데'


"같이 놀래?"
미국 TV 토크쇼 중 가장 인기있고 영향력 있다는 '오프라 윈프리 쇼'에서는 언젠가 집중적으로 마리아 슈라이버라는 아동문학가가 쓴 "티미는 왜 저래?"라는 책을 소개했다. 토크쇼 중에 윈프리는 탐 설리반이라는 시각장애인 사업가와의 인터뷰를 인용했다.
설리반은 절망과 자괴감에 빠졌던 자기의 인생을 바꾸어 놓은 말은 단 세 단어였다고 했다. 어렸을 때 혼자 놀고 있는 그에게 옆집 아이가 "같이 놀래? (Want to play?)"라고 물었고, 그 말이야말로 자신도 다른 사람과 똑같은 인간임을 인정해 주고 살아갈 수 있는 용기를 주는 말이었다고 했다. 이에 슈라이버는 "같이 놀래?"는 자기가 쓴 모든 작품의 주제로 볼 수 있다고 답했다.
모든 아이들이 서로 '다름'을 극복하고 함께 하나가 되어 '같이 놀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 자신의 작품들의 궁극적인 목적이라는 것이었다.  - '작가의 말'중에서 - 

'꽃인줄 알고 다가가면 거품이야, 잘 생각해 보면
거품이 꽃인 것도 같고. 다들 그래.
증발인지 함몰인지 몰라.
......
꽃 구경 와'


 '가끔 중세를 꿈꾼다 (민음사 )'  중에서 

1

버스가 급하게 모퉁이를 돌았다. 옆에 선 사내가 근육을 긴장시키며 손잡이를 움켜쥔다.
사내의 팔뚝에 담뱃불로 지진 자국이 보인다.
둥글고 큼직하게 주위 살들을 잡아당기며 아문 흉터가 세 개 일렬로 박혀 있다.
언제였던가, 나도 그런 시도를 한 적이 있었다. 술을 많이 먹고 친구들 앞에서 고통을 참으며 독하게 지졌었다. 상처는 많이 부풀어올랐다. 며칠 동안 팔 전체가 화끈거렸고, 화끈거렸지만 아무 흉터도 남지 않았다.

햇살 내리네 저 햇살
아무것도 기억하지 않는 따사로운 햇살

사내는 아마 물집이 생긴 자리를 세 번 이상 더 지졌을 것이다.
아무도 근접 못할 만큼 무시무시한 기억을 훈장처럼 팔뚝에 새겨넣기 위하여 사내는 아까처럼 팔뚝의 근육을 긴장시키며...... 이를 악물었을 것이다, 젖은 숫돌처럼.

2

지나간 일들은 정말로 지나가버린다, 그날에나 지금에나 햇살 저 햇살, 아래 집들은 웅크리고만 있다.
그런 식의 무례한 작별인사는 그를 자꾸 뒤돌아보게 했다.
들꽃에게라도 말 걸고 싶은 발걸음. 얘 너도 집이니? 아니 나는 城이야. 지나간 일은 일도 아니다. 기억만 고대인류의 꼬리뼈처럼 진화의 문턱에서 흔들거릴 뿐.

'가끔 중세를 꿈꾼다 (민음사 )'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