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학의 시

자학의 시:
고다 요시이에 (지은이), 송치민 (옮긴이), 세미콜론







1권의 첫번째 이야기 제목처럼 유키에는 박복한 여자다.
남편은 경마와 빠친코로 유키에가 벌어온 돈을 탕진하고 툭하면 밥상을 엎는 백수건달이다.
그래도 유키에는 행복하다고 한다.
혼인신고를 안해도, 유키에의 월급을 몰래 훔쳐서 경마에 탕진해도, 도박자금을 마련하려고 냉장고며 TV를 내다 팔아도..., 또 집에서 나가라고 내쫓아도 저녁이면 남편 밥 차려주려고 부리나케 들어오는 여자다. 남편이 술에 취해 잠이 들면 몰래 손톱과 발톱을 깎아주는 여자다. 험하게 몸부림을 치며 잠들어도 남편이 잘 자리는 비워놓고 잠들고, 남편이 밥상을 엎어도 자신이 다칠까봐 피해서 던져준다며 근본은 착한 사람이라고 믿는 여자다. 유키에가 바라는 건 한 가지 뿐이다. '대신 나를 사랑해주세요.'


어릴 때부터 유키에는 쭉 그래왔다. 엄마의 얼굴을 몰라도, 조간,석간 신문돌리기에, 종이꽃만들기를 하며 생활고에 시달릴 때도 점점 무거워지는 인생에 지지않기 위해 헐떡거리며 달려온 그녀였다.

유키에의 남편 이사오는 아무 것도 모르는 남자다.
자신의 손톱이 어째서 자라지 않는지 모르고, 유키에가 행복하다고 하면 그게 무슨 뜻이냐며 밥상을 엎고, 사랑한다는 말 한 마디를 하려면 땀을 뻘뻘 흘리고, 매일 싸움질에..., 임신했다는 유키에의 말에는 사흘이나 누워버린 남자다.


1권은 뭐, 당황스럽고 불편하긴 하지만, 위트있는 에피소드의 힘으로 그럭저럭 읽힌다. 동네아줌마나, 식당사장, 아버지같은 주변 인물의 에피소드도 적절하다. 2권으로 가면 느낌이 조금씩 달라진다. 찌질하고 구차해보였던 그녀의 일상이, 그리고 '행복하다'는 그녀의 고백이 드라마 안에서 서서히 이해가 된다.
온전히 고통으로 빚은 행복이라...그녀가 빛나보인다.


2권 말미에 이르러, 유키에는 엄마에게 편지를 쓴다.


"엄마, 이제부터는 무슨 일이 일어나도 무섭지 않습니다.용기가 생깁니다.
이젠 인생을 두 번 다시 행복이냐 불행이냐 나누지 않을 겁니다.
뭐라고 할까요? 인생에는 그저 의미가 있을 뿐입니다."


이 말은 마지막에 한 번 더 되풀이해서 서술된다.


"행복이든 불행이든 이제 상관 없다.
양쪽 모두 가치는 같다.
인생에는 분명히 의미가 있다."




다 읽고나서야 생각한 건데, 유키에의 삶은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에서 마츠코의 삶과 비슷한 구석이 있다.
일생을 사랑받기 위해 애쓰지만 불행의 선택을 받은 그녀들. 하지만 누가 그녀들이 불행하다고 함부로 말할 수 있을까.
유키에의 말대로 인생은 그저 살아가는 데 의미가 있다면 말이다.


묘하게도, 영화로 제작된 '자학의 시'에는 나카타니 미키가 '유키에'로 나온다고 한다.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에서 마츠코였던 그녀다.
그리고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만든 영화'공기인형'도 이 만화의 작가인 고다 요시이에의 작품이 원작이라고 책 날개에 씌어있다.

Posted by nuncoo at 02:23 AM | in 책읽기 | Comments (0)

심야식당, 커피 한 잔 더

책을 보고나면 나도 모르게 저자의 어투와 문체에 동화된다.
나 스스로가 확연히 느낄 정도로 책에 나온 주인공처럼, 혹은 작가처럼 말하고 있다.
뭐, 좋은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봐야 하룻밤 자고 나면 원래의 두서없는 '나'로 돌아오지만 나에게 고요하게  스미는 책의 느낌이 좋다.


착한 책을 읽고 나면 나도 덩달아 착해지는 느낌이다.
[심야식당]과 [커피 한 잔 더]도 참 착한 만화다.
요리법이 나오지 않는 음식만화.
하지만 감히 그 맛과 향이 느껴진다...고 말하고싶은 만화다.







밤12시부터 아침7시까지 영업하는 '심야식당'에는 각계 각층의 사람들이 모인다.
48년동안 게이바를 운영해온 늙은 게이, 폭력단 조직원, 야근을 마친 회사원, 스트립퍼, 무명의 엔카 가수, 소매치기...... 메뉴는, 뭐든지 주문만 하면 만들수 있는 한 만든다는 게 심야식당의 영업방침이다.
배고픈 사람들은 좋아하는 음식 앞에서 솔직해진다.
허기에 지치고, 사랑에 지치고, 야근에 지친 그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앞에 놓고 풀어놓는 인생이야기.
자정너머 KBS 앞 '김밥천국'의 추억이 있어서 그런지, 나에게는 더욱 특별한 만화... [심야식당]은 맛의 기억을 일깨워주는 착한 만화다.


[커피 한 잔 더]는 작가가 좋아하는 밥 딜런의 노래 'One More Cup of Coffee'에서 따온 제목이란다.
핸드드립커피의 소박함과 추억이 있는 만화. 
커피로 만났던 인연과 커피가 있는 달고 향기나는 풍경들이 투박한 그림체로 정겹게 그려진다.
역시나 따뜻하고 착한 만화.



 

Posted by nuncoo at 09:19 PM | in 책읽기 | Comments (2)

오랜만에 시

Posted by nuncoo at 01:54 AM | in 책읽기 | Comments (0)

바텐더

바텐더 Bartender 1 - 상냥한 막대기 /조 아라키 (지은이), 나가토모 겐지(그림),학산문화사(만화)


'안녕, 절망선생'이후 정붙일 만화를 드디어 찾았다.
바텐더가 나오는 칵테일 만화지만 손님을 맞는 바텐더의 자세라든지,
바텐더를 찾는 손님들의 이야기를 볼 때 단순한 칵테일 만화가아니다.
딸기가 한두 권씩 사모을 때는 쳐다보지도 않았는데, 나는 이제야 재미가 들려 1,2,3권을 단숨에 읽고 4권을 보는 중이다.
한 가지 아쉬움이 있다면, 내가 칵테일에 대해서 몰라도, 너무 모른다는 점.
만화에 나오는 바처럼
화려한 장식이나 시끄러운 음악 없이, 제대로 교육받은 바텐더 몇몇만이 정자세로 서서 카운터를 지키는, 그런 바에 한 번 가보고 싶다.

Posted by nuncoo at 02:19 AM | in 책읽기 | Comments (4)

아름다운 응급실

 

아름다운 응급실 - 평화와 생명을 가꾸는 한 외과의사의 지구촌 방랑기(원제 The Dressing Station ,2001) 
조너선 캐플런 (지은이), 홍은미 (옮긴이) /서해문집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태어나 의대를 졸업하고, 전세계를 돌아다니며 대가 없는 봉사와 의학의 상업적인 면을 두루 경험한 저자의 세계방랑기다.
의료봉사단, 크루즈의 선의, 비행기의 항공의로 일하면서 경험한 수많은 이야기 중에서도  터키-이라크 접경지역에서 쿠르드족 난민과 부상자들과 함께 한 이야기가 가장 실감나고 인상적이다.

의술을 모르는 우리 입장에서는 ...그가 외과 수련의로 있던 시절, 선배와 동기들에게서 배웠다는 외과수술의 작은 팁들도 재미있다.
그 기술과 팀은 가령 이런 것이다.
'어디로 연결되었는지 모르는 관조직은 자르지 말 것.' ' 가위 끝이 보이지 않을 때 가위 날을 다물지 말 것.'
그리고 그들 사이에서는 지식보다 더 중요하다는  격언.. ' 외과의사는 틀릴 수는 있으되 절대로 망설이지는 말아야 한다.'  이런 말들은 생명은 위태롭고, 죽음은 가까운 응급상황에서 당황하지 않고 배포있게 처신하는 능력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알려준다. 조너선 캐플런에 의하면 외과의는 옷을 반듯하게 차려입고 안으로는 지혜를, 밖으로는 효율성을 추구하는, 반은 칼잡이요, 반은 성직자이어야 하는 사람이다.



미국의 의대 연구소에 첫 출근한 날, 연구소장은 묻는다.

" 의학적 진보란 게 뭐냐구?...
이 분야에서 학문적 발전이란, 만약 쥐를 가지고 실험을 했다면 논문이 하나 나오는 것이고,
학문의 비약적인 발전이란 그 쥐를 살아있게 만드는 것이지,"

Posted by nuncoo at 01:11 AM | in 책읽기 | Comments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