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에 감기가 걸린다.

어느 여자아이의 생일 - 나나난 키리코 단편집 | 나나난 키리코 (지은이) | 하이북스  중에서




일요일에 감기가 걸린다 - 제 1화  이나자키의 이야기





내가 좋아하는 아베는 오늘도 오오타씨를 보고 있다.
오오타는 나이가 한 살 위의 사람으로 (재수를 한 모양이다) 클래스의 여자아이들은 배려를 한답시고 오오타와는 별로 말을 하려고 하지 않지만  오오타와 나는 그냥 말 정도는 하는 사이다.
아베와 나도 겨우 말이나 할 정도의 사이니까.
난 오오타를 좋아하는 아베를 미워하지는 않는다.
아베에게 사랑받는 오오타도 밉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콜록콜록-'
'감기가 심한가봐? 괜찮아? '


나를 쳐다보는 병든 오오타의 얼굴은 뭔가 굉장히 예뻤다. 예쁘고 병약해 보여서 부러울 정도로 그런 얼굴.


'열 있어. 무리하지 말고 집에 가.'
'응, 그럴까봐.'


나와 오오타가 대화하는 상황을 멀리서 아베가 지켜보고 있는 걸 알수 있었다. 오오타를 대하는 나의 태도.
난 지금까지 이러니 저러니 하면서 착한 척을 하면서 결국은 오오타밖에 보지 않는 아베의 눈에 들려고 오오타에게 접근했던 건가...
추한 내 속마음을 깨닫고나니 나 자신에게 좀 질려버렸다.
'오오타, 아베를 좋아하지 말아줘.지금처럼......
아베, 날 좋아해줘'


하지만 지금 아베가 아무렇지도 않은 척을 하고 있는 건
아마...오늘밤에 오오타에게 전화를 하기 때문일 것이다.







제 2화- 오오타의 이야기




'아 여보세요.
나, 아베인데... 오늘 학교 쉰 거,
역시 감기 때문이야?
열 같은 거 있으면.. 내가 거기로 갈까?
나, 거기 가면 안돼?
주소 알아. 명부 보면.
아, 전철이 아니고 자전거 있으니까.... '


날 좋아한다는 사람이 우리 집에 온다.
난 감기가 걸려서 몸이 나른하고 열도 좀 있어서 ...
하지만 누군가에게 간병을 받지않으면 안되는 것도 아니고 해서 혼자서 조용히 자고 싶었다.
하지만 그 사람은 온다. 날 좋아한다는 그 사람은 멀리서 한 밤중에 자전거를 타고 온다.  난 그 사람을 싫어하지는 않지만, 좋아하는 것도 아니니 기쁘지도 않다.

'이나자키도 오오타 걱정하던데 ..'
'훗 그 애는 언제나 엄마같은 소리를 하네'


이나자키는 아베군과  이야기를 하기 위해 내 이름을 꺼내고
병문안을 온 아베군은 나와 이야기를 계속 하기 위해 이나자키의 이름을 들먹인다.
우리들은 아마 맞지 않는 것 같다.


' 저기 아베군,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난 솔직히 아베군과 별로 할 얘기도 없고
오늘 우리 집에 와준 것도 고맙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내 맘이 바뀌는 것도 아니고 ...'
' 어, 내 멋대로 온 건데...  미안...'


미안, 사과하게 해서 미안.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좋아하게 되는 건 아니지만
날 좋아해주고 있는데 사과의 말만 하게 만들어서 미안.


그날 얕게 든 잠 속에서 아베군이 내게 키스하는 걸 느꼈다.
난 알지 못하는 척하면서 베개에 얼굴을 묻었다.






제3화 아베의 이야기




감기가 걸렸다.
모처럼의 일요일에 감기가 걸려서 아무 데도 못가고 아무 것도 못하고 바보같이 자기만 하는 건 따분하지만
아마 이건 오오타에게 옮은 걸 테니까 그래도 좋아..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잠에서 깨니 무슨 이유인지 내 방에 이나자키가 와 있다.
토요일날 학교에서 오전 수업 중에 돌아가는 날 보고
오지말라는 내 말은 무시한 채 멋대로 와 있다.

'죽 데워줄게. 이거 말이지, 아침부터 엄마가 쭉 옆에서 가르쳐줘서 만들어 온거야'
' 성가셔.. 이나자키 너, 일요일에 뭔가 다른 할 일은 없어? '
' 이런 일이 굉장히 재미있는데? 아베를 위해서 우리집 가스 불 앞에서 밥 만들어지는 걸 계속 보고 있으면 굉장히 즐거워. 또 아베가 감기 걸리면 오늘처럼 찾아와도 돼?'
'그럼 난 이제 평생 감기 안걸릴 거야'


난 문득 그날.
오늘의 이나자키와 똑같은 일을 한 그날의 나와 오오타를 떠올리고 있었다.
그때 ....
입을 반쯤 벌리고 괴롭게 숨을 쉬는 오오타에게 키스했을 때.
열 때문에 뜨거운 오오타의 입술은 뜨겁고 부드러웠고 약 냄새와 체취가 났다.
오오타를 정말로 좋아한다고 마음 속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그날 나를 방에 들여놓을 때 오오타가 이불이 아니고 바닥에 앉았던 건
그건 아마도 날 다가오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 포기한다는 건 이런 걸지도 모른다.

Posted by nuncoo at 11:47 PM | in 책읽기 | Comments (0) | TrackBack (0)

불량직업 잔혹사

불량직업 잔혹사 - 문명을 만든 밑바닥 직업의 역사 | 원제 The Worst Jobs in History (2004)  
데이비드 윌콕, 토니 로빈슨 (지은이), 신두석 (옮긴이) | 한숲출판사


영국 '채널4'의 고고학 시리즈물 사회자와 프로듀서로 일하고 있는 사람이 써낸 ... 영국역사상 최악의 직업사다.  뭘 기준으로 최악인가.. 묻는다면 애초에 고통을 측정하는 객관적인 방법 같은 거야 있을 턱이 없으니.. 저자들 마음대로다. 대개는 하루치 식량을 위해, 죽지 않고 먹고살기 위해 할 수밖에 없었던.. 더럽고, 힘들고 위험한 직업들 예순네 가지가 소개되어있다.
걔 중에는 묘사가 너무 적나라하고 혐오감이 드는 것도 있어서 몇 군데는 읽지 않고 그냥 넘어가기도 했다. 딸기군 말대로 식사시간에는 읽지 않는 게 좋겠고, 비위가 약한 분들은 페이지를 적당히 넘겨가며 듬성듬성 읽는 요령이 필요하겠다.
부제는 '문명을 만든 밑바닥 직업의 역사'. 
우리가 학습한 문명사에서는 잘나가던 인물에 가려 슬쩍 이름이 빠져있었던 가난하고 보잘것없던 직업인들의 구질구질한 생존기. 그러나 이들이야말로 인류문명의 진정한 창조자들이며 이들이 없었다면 중세든 현대든 문명은 절대로 유지될 수 없었을 거라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이하는 책에 나오는 .. 앗, 세상에 이런 직업이?

구토물 수거인(Puke Collector): 호화로운 로마식 연회에서... 한 코스의 요리가 끝날 때마다 다음 코스를 먹기 위해 좀 전에 먹은 걸 다 게워냈다는 얘기는 사실이었다. '그들은 먹기 위해 게우고, 게우기 위해 먹는다- 세네카' . 음식과 술에 취한 손님들이 노니는 곳.. 테이블 밑이나  침대식 의자 밑에서 그들은 숨죽이고 있거나 기어다닌다. 그들의 직업은 구토물 수거인. 손님이 다음 음식을 먹기 위해 속을 게워내면 재빨리 토사물을 치우는 게 그들의 일이었다.


갑옷담당종자 (Arming Squire): 영화나 TV에선 단 몇 분의 주요장면으로 끝나버리는 중세의 전투. 물론 실제로도 그랬을 거라고는 생각하는 사람은 없겠지.
혼란과 공포에 휩싸인 격전, 그리고 잠시 동안의 휴식 이후 계속 이어지는 전투.. 아무리 용변이 급해도 화장실에 갈 시간도 없었을 것이 분명하다. 전장에서 돌아온... 안팎으로 오물로 범벅이 된 갑옷을 닦고, 손질하고  무게가 28킬로그램이나 나가는 그 갑옷을 주인에게 입히는 일. 그것도 갑옷담당 종자가 하는 일이었다.


사형집행인(Executioner): 지은 죄야 어떻든, 같은 인간으로서 누군가의 목숨을 끊어야만 한다니.. 정신적인 스트레스로 보나 .. 어떤 면에서 봐도 최악의 직업일수 밖에 없겠다.. 어떤 사형집행인은 형 집행을 마친 후에 사형수의 옷가지를 챙겨 내다 팔아서 가외수입을 취하기도 했다고 한다. 때로는 사형수의 친구들로부터 보복의 위험을 당하기도 했고 범죄를 저질렀다가 목숨을 내놓는 대신 사형집행인이라는 직업을 선택한 경우도 있었다고 하는데 ..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 명을 다하지 못하고 일찍 죽은 사형집행인이 많았다고 한다.


다리에 부상을 입은 이후, 엄청나게 뚱뚱해져서 제대로 거동하기가 힘들었던 헨리 8세는 밑 닦는 일 까지 남의 손을 빌리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 왕의 엉덩이를 닦는 게 일이었던 변기 담당관, 여성의 연극출연이 허락되지 않던 튜더왕조 시대에 여성역할을 해야했던 소년배우도 최악의 직업으로 꼽혔다.  스튜어트 시대의 서캐잡이 (그 우아해보이는 가발 안에 서캐와 머릿니가 우글우글했다니 끔찍하다.), 흑사병시대의 흑사병 매장인, 개와 고양이 도살자,  런던 대화재 이후 세인트폴 대성당을 다시 지을 때.. 2년 동안 허공에 매달려 그림을 그려야 했던 돔 화가도 저자들이 꼽은 최악의 직업들이다.
조지왕조 시대로 들어오면 웃기면서 기가 막히는 직업 하나가 등장한다.  부자들의 잘 가꿔진 정원에서 액세서리 역할을 해줄 인간조각상. 인간조각상을 찾는 그들의 광고문구는 대개 이러했다.
' 7년간 인간 조각상으로 지낼 사람 구함. 성서 한 권, 안경, 발을 올려놓을 깔개, 베개로 쓸 방석, 마실 물 그리고 음식은 무료 제공. 어떤 상황에서도 머리털이나 수염, 손톱 등을 깎아서는 안 됨, 또한 정원 밖으로 나가거나 하인과 말을 섞어서도 안 됨'


카스트라토도 최악의 직업으로 꼽혔고, 우리는 흔히 가련한 성냥팔이 소녀쯤으로만 상상하지만 알고보면 노동자의 권리를 찾기 위해 대차게 싸웠던 여성노동자- 성냥공장의 소녀들. 넝마주이, 여송연꽁초 수거인 등도 냉혹한 시절에 험한 일을 마다할 수 없었던 최악의 직업인이었다.


그렇다면, 저자들이 뽑은 영국 역사상 최악의 직업은 어떤 일일까?
'고됨, 더러움, 낮은 보수, 위험도, 지루함'을 기준으로 그들은.. 이 일을 최악이라고 뽑고, 맨 마지막에 이 직업인이 갖추어야 할 조건 하나를 더 붙인다. '코가 없을 것'.
거의 모든 시간을 동물의 생가죽이 썩어가는 역한 냄새와 오염된 공기 속에서 보내야 했던 그들.  그들을 가리켜 사람들은 무두장이( Tanner)라고 불렀다.



얼마 전에는 이런 기사도 봤는데...  과학계 최악의 직업- 오랑우탄 소변채집 전문가 .
내 손에 똥 묻고, 오줌이 묻어서 최악이 아니라 먹고살기 위해서 .. 죽지 못해 하는 일이라면 뭐든 최악이지 싶다.
단지 먹고살기 위해 하기싫은 일을 하는 건 '매춘'이다.. 라고 이 비슷한 말을 한 사람이 있었는데 이건 누구였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Posted by nuncoo at 11:53 PM | in 책읽기 | Comments (4) | TrackBack (0)

나나난 키리코

'키리코 나나난'이라고 읊고 다녔는데 책에는 '나나난 키리코'라고 표시되어있다. '키리코'가 성이고 '나나난'이 이름일테니 -무라카미 하루키- -사카모토 류이치-처럼 '키리코 나나난'이 되어야 하는 거 아닌가?
뭐, 중요한 건 아니니까 암튼... 품절됐다는 '호박과 마요네즈' 빼고 '어느 여자아이의 생일' '아픈 사랑' '스트로베리 쇼트케이크'가 도착했다.
내 취향일 것 같아 설레긴 하는데... 표지를 열고 좌르륵 훑어본 느낌은
그림이 큼직큼직하고 선굵은 윤곽만 도드라져 있는 게 ............................
'이건 꼭 색칠공부 원판 같잖아?'

Posted by nuncoo at 06:40 PM | in 책읽기 | Comments (5) | TrackBack (0)

1118

Posted by nuncoo at 04:10 PM | in 책읽기 | Comments (6) | TrackBack (0)

장난삼아

" 장난 삼아

장난 삼아 엄마를 업었네.

너무 가벼워서 눈물 겨웠네.

눈물겨워 세 발짝도 걷지 못했네."




옛파일에서 찾아낸 이시카와 타쿠보쿠의 시

Posted by nuncoo at 02:04 AM | in 책읽기 | Comments (0) | TrackBack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