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왜 항상 늦지?"

"넌왜 항상 늦게 도착하지?"
"넌 좋은 놈이지만 뭔가 이상하단 말야"
고객과의 약속을 목숨처럼 생각하는 피자가게 주인은 8분 안에 배달을 마치라며 그를 등 떠밀고
"자네 자신을 보라구. 수업에는 늦고, 항상 힘이 없어 보이고.. 준비라는 것은 이 학교 전공에는 없네"
담당 교수도 반쯤 포기한 듯한 눈으로 그를 보고
사랑하는 메리 제인마저 늘 머뭇거리기만 하는 그를 떠날 채비를 하는 것 같고.
그래도 괜찮다. 파커는 영웅이니까. 피터 파커가 아니라 스파이더맨으로서 꼭 해야할 일이 있으니까.
피자가게에서는 해고를 당하고 집세는 밀리고 사랑하는 여인은 다른 남자와 날을 잡았어도 그에게는 스파이더맨을 기다리는 뉴욕시민들이 있으니
까.

정의를 위해 벽타기, 줄타기를 해야하는 스파이더맨도 아니면서
친한 사람들이라고 해봐야 빠듯하게 열 손가락 접고 나면 끝일 정도로 인간관계 또한 좁고 얕은 주제에
매일 늦거나 안나타나거나 머뭇거리느라 시간만 버리는 나는 뭐냐.

영웅은 헛점 투성이에 비루한 인간의 모습을 해도 멋지지만
'영리하지만 게으른 인간'도 못되는 나 같은 사람은 제 약점을 찌르는 대사 한마디에 움찔하여
신나게 영화 봐놓고도 이렇게 자책에, 신세타령하느라 밤이 가는 줄을 모른다.


인생극장 같은 장면이다. 어떤 의상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진다.



스파이더맨을 더욱 인간적으로 만들어주는 몇 가지 장치들.
시를 읽는 스파이더맨.

















읽을 거리: 스파이더맨의 이상과 실제- 박상준(과학칼럼리스트)


Posted by nuncoo at 02:30 AM | in Culture | Comments (2) | TrackBack (0)

September 06, 2004

뒷북-Lost in Translation

10여년 전쯤에 알았던 그 남자. 마지막 만나던 날.
'이게 마지막 저녁 식사야. 우리가 함께 하는'
끓고 있는 부대찌개에서 라면 면발을 골라내며 내가 하는 말을 알아듣지 못하고 땀을 뻘뻘 흘리며 국물만 들이키던 그 남자.
나와 헤어지고 그 남자는 PC통신 게시판 어딘가에 이렇게 적어놓았었다.
'마음의 상처가 있는 사람은 가끔 자신의 과거를 묻지 않는 곳에서 생활 할 필요가 있는 것
같아'
내가 그에게 상처였는지 그가 택한 마음의 망명지가 어디였는지는 모르지만 10여년이 지
난 후에도 이렇다 할 추억도 없는 그를 선명하게 기억하는 건, 바로 저 한 줄의 문장 때문이다.
상황종료를 알리는 문장 속에서 비로소 소통하다니 ...
돌아보니 ... 우리는 둘 다 저 한 문장을 얻기 위해.. 혹은 체감하기 위해 잠깐 맺어진 인연이
었는지도.




낯선 동양의 나라 한복판에 던져진 밥 해리스(빌 머레이)와 샬롯( 스칼렛 오한슨)도 여러가
지 형태의 소통불능을 경험한다.
(많은 것들이 불통의 증거로 등장한다.
힘들다고 국제전화를 한 샬롯에게 그녀의 친구는
엉뚱한 소리나 해대고, CF감독은 외국어로 오버하고, 병원 복도에서 만난 노인은 알지못할 소리를 하고, TV토크쇼의 MC는 호들갑스럽고, 미국에 있는 부인은 '곧 나가봐야한다'는 소리만 하고, 사진작가인 남편은 수다스럽게 바쁜 일과만 늘어놓는다)
허나 영화 보는 내내 나도 그들과 섞이지 못하고 바깥만을 겉돌았다.
기이한 공룡을 보듯 동양을 보는 그들의 시선에 대한 불편함도 있었을 거고 (난 일본 사람
도 아니면서 )
뭔가 그래도 강한 임팩트 하나쯤은 있지 않을까 기다렸는데.. 밥 해리스의 알
아듣지 못할 귓속말만 움켜쥔채
나는 그대로 영화밖으로 떠밀려났다. 이것이야 말로 Lost
in Translation..


















이미지출처: 구글 이미지 검색 (--;;)

그리고 빌 머레이 아저씨가 가라오케에서 불렀던 노래.
O.S.T에는 수록되지 않았다. (More Than This-Roxy Music)





소통이나 불통에 관한 메타포를 지워버리고 내 맘대로 오역하자고 작정을 하고보니
영화 Before Sunrise와 오래 전에 씨네21에서 홍상수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 아침에 회사를 가다가 예쁜 여자를 만났다 치자.
점심 시간엔 그 여자와 같은 식당에서 밥을 먹었고 저녁에 지하철에서 여자를 또 봤다면 집
에서 혼자 곰곰히 생각하겠지. 이게 무슨 운명인가 하고.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잊어먹고
사실 아무 것도 아니었음이 판명된다. 그런 거다 "


*그나저나 빌 머레이 아저씨 늙은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하기야 사랑의 블랙홀이 10년도 더 된 영화니까.
아주 근사하게, 멋지게 늙어서 뭉클하기까지 했다.




Posted by nuncoo at 01:58 AM | in Culture | Comments (6) | TrackBack (0)

September 05, 2004

뒷북-All That Jazz

작정을 한 것은 아니었는데 예상한 대로 되었다. 하루 종일 자고. 먹고. 보고 또 자고.
드라마 '24'의 그림과 자막 씽크가 안맞아서 안간힘을 쓰다가 한 편 보고 까무룩 잠이 들었었는데 깨어서 마음을 고쳐먹고 고른 것이 All That Jazz.
쇼비지니스계의 비열함 같은 걸 그렸다기 보다는 '기디언'이라는. 쇼에 능하나 ...담배, 약물,여자로 인해 서서히 삶이 피폐해가는 한 남자에 관한 이야기다.
뮤지컬 영화 답게 오프닝의 춤 씬.
'Take of with us' 의 에로틱한 춤씬,죽어가던 그가 Bye Bye Life..를 부르던 마지막 씬은 정말 멋지더만.
본래 뮤지컬에는 별 관심이 없는데 영화 자체가.. 감독이었던 Bob Fosse의 Life Scene에 다름 아니라 하니 '캬바레'나 '키스미 케이트'같은.. 그가 안무를 맡았던 작품을 진작에 봐두었더라면...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예전에 뉴욕에 갔을 때도 브로드웨이에 왔으니 뮤지컬은 하나 봐야지..하는 생각으로 '미스 사이공'을 봤는데, 환상적인 조명이랑 무대에 진짜 헬리콥터가 뜨는 것에만 놀라워하며 별 감흥은 받지 못했던 기억이 있다.



이것이 오프닝의 춤씬.







여자들끼리 수다 떨며 봤다면 이런 소리도 나왔을 법 하다.
" 방송판, 영화판, 연예판.. 역시 화류계 남자들은 안돼!"

어쨌거나
죽음이 시시각각 다가오는데도 매일 아침 거울을 보며 자신을 향해 주문을 거는 .. 쇼에 미친 이 남자의 모습은 의미심장하였다.
  "It's showtime!!"

Posted by nuncoo at 03:52 AM | in Culture | Comments (0) | TrackBack (0)

August 26, 2004

잘 골라 드십시오






KUNSTBAR (The Bar of Art)

By The Petri Lounge (Denis Gonzalez, John Halfpenny, Chris Labonte, Paul Teglas and Steve Whitehouse)
( via http://cyworld.com/sourtimez  )




Posted by nuncoo at 01:50 AM | in Culture | Comments (3) | TrackBack (0)

August 23, 2004

아마 늦은 여름이었을 거야.

-산울림

꼭 그렇진 않았지만
구름 위에 뜬 기분이었어
나무사이 그녀 눈동자
신비한 빛을 발하고 있네
잎새 끝에 매달린 햇살
간지런 바람에 흩어져
뽀오얀 우윳빛 숲속은
꿈꾸는 듯 아련했어
아마 늦은 여름이었을꺼야
우리들은 호숫가에 앉았지
나무처럼 싱그런 그날은
아마 늦은 여름이었을꺼야.


선명한 햇빛과 윤곽이 뚜렷한 공원의 나무와
한 여름의 권태와 나른함과 닮은 노래.
이 곡을 처음 들었던 1990년대 중반. 나의 내면은 어떠했던가. 옆에 누가 있었던가. 없었나.
햇빛이 쨍쨍하게 내리쬐는 날. 거리에서 이어폰을 끼고 듣고 싶은 노래.

아마 늦은 여름이었을 거야- 산울림

Posted by nuncoo at 01:13 PM | in Culture | Comments (7) | TrackBack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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