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cember 22, 2004








Cattle Call -Eddy Arnold

사진:  Mara Bodis-Wollner



Posted by nuncoo at 11:59 PM | in Diary 2004 | Comments (6) | TrackBack (2)

December 18, 2004

전화 한 통

전화 한 통을 걸어야 하는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사이에 벌써 밤이다.
어서 빨리 전화를 걸어서 어제 저녁에 작정한 대로 듣기 좋다는 솔음으로 음성을 높이고 잘 지내셨어요? 까르르 웃음부터 터트린 후에 종알종알 착한 목소리로 얘기를 늘어놔야 하는데 나는 쓰레기를 갖다 버리고 청소기를 돌리고 주문했던 CD의 비닐 케이스만 벗겨내면서 차마 수화기를 들 엄두는 내지 못하고 있다.

낮에 깜빡 잠이 들었는데 내 불편한 잠을 흔드는 소음이 있었다.
평소 같았으면 침착하게 소리가 멎기만을 기다렸을텐데 오늘은 이 아파트를 다 뒤져서라도 소리의 진원지를 찾아내기로 결심한다.
용서라는 말이 도저히 끼어들수 없는 날도 있는 법이다.
초인종을 눌러도 옆집은 반응이 없다. 위층으로 올라간다. 현관문 앞에 널부러져 있는 소음의 흔적.
무심한 인부 아저씨는 타일을 뜯어내는 작업이라 30분은 소리가 계속될 거라며 용서도 필요없다는 표정으로 현관문을 닫아버린다.
'나는 오후에 할 일도 많고, 중요한 전화 한 통도 걸어야 하는데 이렇게 시끄러워서는 내 머리통이 통채로 터져버릴지도 몰라요'
계단을 내려오며 한 발짝에 0을 찍고, 한 발짝에 1을 찍고, 또 한발짝에 1을 찍으며 수 십번도 되풀이해서 돌려보았을 그 전화통화의 시물레이션을 그려본다. 어서 빨리 걸긴 걸어야 하는데.

저녁에도 전화 한 통을 걸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몸은 딴짓을 하고 있었다.
빨래를 개다보니 오늘따라 수건 하나는 각이 맞질 않고, 양말과 스타킹은 죄다 뒤집어졌다. 개봉하지 않았던 우편물을 정리하고 주소가 적힌 봉투들은 북북 찢어 쓰레기통에 버리고 책을 폈다, 텔레비전을 켰다,창문을 열었다 닫았다, 결국 타이레놀 한 알을 삼켰다.
미루고 미뤄도 언젠가는 닥칠 일. 오늘 걸어야 할 전화 한 통이 있다.

 

Posted by nuncoo at 08:11 PM | in Diary 2004 | Comments (4) | TrackBack (4)

December 10, 2004

할머니

zakang의  기대 에 호응하여.

1.
나는 아직도 할머니가 모기가 되었다고 믿는다.
할머니가 채 입을 다물지 못하고 가셔서 아버지가 손을 모아 할머니의 입을 다물게 해드린 건, 밖으로만 떠돌던 .. 그래서 당신의 임종조차 지키지 못했던 막내 아들의 이름을 애타게 부르는 순간 숨이 멎었기 때문이라고 믿는다.
사춘기 시절 집을 나가 연락이 끊겼던 막내삼촌은 성인이 되어서야 일년에 한 번쯤 집엘 왔다.
그리고 삼촌이 다녀간 날. 우리 집은 쑥대밭이 되었다.
할아버지가 남겨놓은 땅을 막내 삼촌만 빼놓고 아버지랑 작은 아버지가 나눠 먹었구나 ... 안방 벽을 울리는 악다구니 속에서 내 나름대로 이 쑥대밭의 진상을 얼기설기 꿰어맞춰보기도 했지만 그래도 삼촌이 무섭고 미웠다.
그런 다음날엔 동네 아주머니들이 몰려와 '어느 집에나 저런 망나니가 하나씩은 꼭 있다니까' 하면서 엄마를 위로했고 엄마는 시집 와서... 늘 병석에 누워있는 할머니를 대신해 당신이 다 키워놨는데 멱살까지 잡혔다며 서럽게 울어댔다.
나는 그런 엄마 모습도 보기 싫어 안방으로 쪼르르 달려가 누워있는 할머니 품으로 파고 들었다.
그러나 할머니의 베개는 이미 오래 전부터 그랬던듯 차갑고 축축했다.

2.
종알거리는 말에 대답도 안해주고 누워만 있는 할머니 곁에 있는 것이 심심해진 어린 손녀는 할머니 머리 맡에 놓여있는 복숭아 간쓰메를 떠먹으며  삼촌이 얼른 장가나 들어서 정신을 차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복숭아 과육을 다 건져먹고 단 국물까지 남김없이 마셔버린 후에야 엄마한테 '철없는 것'이라고 혼날 생각에 겁이 난다.
'어느 집에나 망나니 하나씩은 꼭 있다던데 우리 형제 중에는 누가 망나니가 될까?'  삼촌이 온 날이면 자길 떼어놓고 친구 집에 놀러가버리는 언니들과 언니에게 업혀나간 동생 얼굴을 떠올리다 할머니 옆에서 잠이 든다. 긴 머리카락을 넓게 펴서 눅눅한 베개를 덮고 제법 기분 좋게 잠이 든다.
그때의 꿈은 간쓰메 국물처럼 달달하다.

3.
가망 없다는 할머니를 병원에서 모셔오고도 며칠이 지난 어느 날.
집안에 일제히 곡 소리가 퍼지고도 몇 시간이 지난 후에서야 삼촌은 대문을 박차고 들어섰다. 예비군복 차림에 모자를 손에 움켜쥐고 짐승 같은 소리를 내며 안방으로 뛰어들어가던 삼촌의 모습을 아직도 기억한다.
처음 본 아버지의 눈물 보다도 낯설고 이상한 군복을 입고 꺼이꺼이 울어대며 제 가슴을 쾅쾅 쳐대던 삼촌의 모습이 어린 나에게는 더 충격이었다. 어느 집안에나 있다던 망나니. 삼촌은 그렇게 자신의 어머니를 보냈다.

4.
울다 지쳐 잠깐 눈을 붙였던 삼촌은 모기 소리 때문에 귀가 웅웅거리고 어지럽다며 하소연을 했다.가는 곳마다 모기가 따라다니며 소리를 낸다고 영문을 몰라하는 가족들을 쳐다봤다. 초가을이긴 했어도 그때는 추석만 지나도 바람이 차던 시절이라 모기는 어디에도 없었다.
더구나 모여있는 그 많은 이들.. 누구도 보지 못했다는 모기가 삼촌만을 따라다닐 리도 없었다.
국민학교 4학년이었던 어린 손녀는 조무래기 사촌들을 끌고나가 반달빵을 나눠먹으며 속삭였다.
" 할머니가 모기가 됐대"


5.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로는 집안이 대체로 조용했다. 삼촌은 가끔 전화를 걸어왔고 1,2년에 한 번씩 집에 내려와도 더이상의 악다구니는 없었다. 삼촌이 베고 간 베개를 서로 베지 않으려고 언니들과 다투는 일도 점차 줄어들었고 엄마가 전화를 바꿔주면 "삼촌 언제 장가가?" 살가운 얘기도 건넸으나
아무도 지난 시절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6.
나는 아직도 할머니가 모기가 되었을 거라고 믿는다.
제대로 돌보지 못한 막내 아들에 대한 회한이 사무치고 사무쳐 돌아가시던 그날 밤. 천하에 망나니 같은 놈이라고  손가락질 받던 아들 귓가에서 서럽게 우셨던 거라고 믿는다.
가끔은 내 귓가에 와서도 달달했던 간쓰메 국물이나 보름달빵같은 얘기를 건네며 머물다 가셨을텐데 무심한 손녀는 손을 휘휘 저으며 그 추억을 마다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제는 초로의 가장이 된 막내삼촌의 귓가엔 아직도 할머니의 울음소리가 남아있을까?


7.
문득,
세상에서 가장 애닯고 간절한 것들은 모기 소리를 낸다,
라고 쓰고 싶어진다.
 

Posted by nuncoo at 03:17 AM | in Diary 2004 | Comments (9) | TrackBack (2)

December 06, 2004

그들만의 리그

1.
부모님과 동생의 신경전에 있어서 나는 언제나 동생편이다. 그것이 뭐 남매 간에 곰살맞은 정이 있어서라기 보다는 제 녀석이 부모님한테 시달림을 당
하는 내용이라는 것이 내가 수년 동안 겪어온 바와 똑같은 내용이고 당시에 나는 내 역성을 들어주는 이가 없어서 홀로 외로웠다. 이유는 그 뿐이다.
어서 결혼을 하라거나 남보다 열 배 백배 부지런해야 성공을 한다거나 이런 잔소리를 듣지 않으려면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혼담이 오가는 장면이 나오면 알아서 화장실에라도 가는양 자리를 떠줘야 하는데 동생은 아직 그런 요
령은 없는듯하니 부득불 내가 나서서 "저렇게 서둘러서 결혼하면 꼭 깨지더라" "저거 다 구라야"  공격 당하는 동생의 방패가 되어주는 수 밖에 .

어렵게 낳은 귀한 아들이라 얘가 뭘 하든 간에 난롯불 옆에 엿놔둔 것처럼 불안해하는 부모님의 심정이야 백번 이해하지만 지 누나집에 자기집 열쇠를 두고 온 동생을 두고 올림픽대로 성산대교 남단 지점부터 반포대교 근처에 갈 때까지 끊임없이 나무라시는 건 좀 심하다 싶었다.
나는 이 차선 저 차선을 넘나들며 차선 바꾸기를 수차례, 앞 차 뒤꽁무니에 닳을듯말듯 속도까지 내 보았으나 두분은 이리 쓸리고 저리
쓸리고 하면서도 이야기는 어찌나 일관성이 있으신지 하다하다 동생의 고등학교 시절 얘기까지 끄집어내신다.
" 얘기 어땠냐면 고등학교 때도 방에 연필 한 자루가 없었다니깐. 그러니 공부를 했겠냐구"
" 집에 오면 책가방은 던져놓고 열어보지도 않아. 그러면서 뭐 잃어버렸다고 맨날 찾고.. 그 버릇이 어디 가겠냐"
열쇠를 두고 왔으니 명백한 증거도 있는 상황이라 대변인 노릇은 잠시 미뤄두고.. 그래도 동맹의 입장에서 마지막 방점을 찍는 기분으로 한 마디 거들어줬다.
" 니가 실수한 거야. 그러게 빌미를 만들지 말랬지? "
그렇게 감싸고 도는 게 동생 위하는 게 아니라며 한 소리 하실 줄 알았는데 아무 말씀이 없으신 걸로 보아 부모님도 이미 나와 동생의 동
맹구도를 간파하신 게 아닌가 싶다.


2.
남부터미널. 화장실에 가신 아버지가 돌아오지 않았다. 걱정이 되서 화장실에 갔던 동생은 뭔가를 가져오더니 주섬주섬 제 가방에 챙
겨넣기 시작한다.
뭐냐고 물어봐도 묵묵부답.

이때 우리가 있는 곳으로 돌아온 아버지의 눈빛이 잠시 부끄럽게 껌뻑이는 걸 눈치챘어야 하는데, 엄마나 나나 이런 상황에는 몹시 집요한 사람들이라는 게 문제였다. 동생은 나와 엄마가 쏘아대는 질문을 못들은척 말 안듣는 지퍼를 올리느라 낑낑거리는데 아버지가 먼저 입을 여셨다.
"속에 저걸 입고 있더라구. 정신없이 나오느라고 그것도 몰랐네"
동생은 먹을 거나 사오자며 얼른 아버지와 자리를 뜨고 새롭게 편이 된 엄마와 딸은 남아서
그 두 사람이 가는 모양을 보며 신이 났다.
"난 또 못본 새 아버지가 살이 붙으셨나 했네. 어쩐지.."
"이번이 처음도 아냐. 지난 번에 왔을 때도 니 형부바지 그대로 입구 왔더라. 사람이 정신이 없다없다 해도 바지 위에 바지를 입냐. 사위
보기 민망해서 원."
"내복이라고 착각했나 보지 뭐"
"아냐. 안경 쓰고 안경 찾는 사람이 니 아부지다. 정신이 없어 "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네"
"실상은 니 아부지가 더해 "


3.
돌아오는 길. 다시 동맹체제로 돌아온 동생과 나는 부모님 얘기에 열을 올리지만 가던 길과는 양상이 다르다. 뒷좌석이 비어있기 때문이다.
"아부지.. 처음에 화장실에서 얼마나 황당했을까? 니가 가지만 않았어도 완전범죄가 될 수 있었는데 ...
니가 산통 깼다"
"....."
" 너두.. 정신 좀 차려라. 젊은 애가 맨날 깜빡깜빡... "
" 아부지가 더 걱정이지. 엄청 꼼꼼하고 깐깐했잖아"
" 쫌 심한 편이셨지"
" 그러니깐..."
"....."


나와 엄마가 이리 붙었다 저리 붙었다 하면서 지켜본 아버지와 아들의 승부는 어쨌거나 1:1 무승부.
그러나 차라리 잘됐다며 서로 미안하거나 불편한 기색 없이 돌아설 수 있는 무승부와는 성질이 다르다.
아버지는 호령하고 호통치고 엄마는 아버지의 역성을 들어주며 끊임없이 소재 발굴에 앞장서고
동생은 스트레스 받으며 밖으로 나가 담배를 피우고 나는 뒤에 남아 동생을 두둔하거나 나중에 밥이나 사주면서 달래고 키득거리는
것이 우리가 계속 하고 싶은 이 경기의 모습이다.


4.
각자의 집으로 흩어진 뒤 동생에게서 전화가 왔다.
언니 집에 형부 바지를 갖다줬어야 하는데 열쇠만 갖고 나와서 아버지한테 또 전화로 일장연설을 들었다고 했다.

"니가 그럴줄 알았다 내가... 아부지, 제대로 복수하셨네. 오늘 편히 발 뻗고 주무시겠다야  "
전화기를 붙들고 남매는 눈물이 쏙 빠지도록 웃었다.  정말 눈물이 났다.
경기는 아직 진행중인가 보다.



Posted by nuncoo at 04:51 AM | in Diary 2004 | Comments (5) | TrackBack (2)

December 02, 2004

떫다, 비리다, 짜다


 (창밖에는 태양이 빛났다 / 송병준)

1.
이런 맛을 뭐라고 해야 할까?
벌써 나흘째 ...불행하게도 나의 머리는 이 처음 맛보는 치약 맛에 딱 떨어지는 형용사를 찾아내지 못하고 있다.
칫솔모는 어금니와 사랑니 뺀 자리, 혓바닥까지 다 훑었고 컵의 물은 이미 차고 넘치기 시작한지 오래다.  괜히 혼자 헉헉거리고 안달한 하루의 마무리 치고는 싱거운 걸?
세면대 구멍 속으로 치약 거
품이 빠져나간다. 몇 개의 단어들이 함께 씻겨 내려간다.
떫다, 비리다, 짜다.

2.
2004년 11월 28일 일요일 저녁  할인마트 이곳저곳을 헤매다니기 전까지는 몰랐다.
갑자기 생전 처음 보는 치약 하나를 덥썩 사들고 오기 전까지는 전혀 알지 못했던 맛이다.
얼음이 풀렸을 무렵 바다표범이나 펭귄, 고래 따위가 몸을 휘젓고 지나갔을 북극의 얼음맛이라 할까..
아니면 그 얼음을 밟고 지나간 순록의 발바닥맛? 그것도 아니라면 얼음 사이에 끼어있던 비릿한 이끼 맛이라고 하면 어떨까?  별 짓 다하네.
이 치약의 맛. 지금 막 지어낸 후보작이다.


3.
집에서 책상 앞에 앉을 때는 의자 위에  두 다리를 올리고 양반다리를 하고 앉는다. 서서 멀리 있는 것을 집중해서 볼 때는 허리에 손이 간다.  잘 미끄러지고 넘어지는 편이라서 바닥이 매끈한 곳을 걸을 땐 구두코만 쳐다보고 걷는다. 가방을 왼쪽 어깨에 매는 건 아무리 노력해도 안되고 집중해서 모니터를 쳐다 볼 땐 보기 흉하게 인상을 쓰나보다.
화난 사람 같다고 사람들이 말한다.
지금은 입을 크게 벌렸다 오므렸다 혀를 길게 뺐다 안으로 밀어넣었다가 계속 입운동을 하는 중이다.
키보드를 두드리면서도 그러고 있다.
밤에 집에 들어와서야 내가 하루 종일 이를 꼭 악물고 있었음을 알았다.
말을 많이 한 날. 쓸데 없이 수선을 떤 날은 잠자리에 누워서도 내가 내뱉은 말들이 이명처럼 귓 속에 웅웅거리던데
오늘처럼 긴장하고 답답한 게 많았던 날은 종일 악물었던 이가 오래 떨다온 사람처럼 얼얼하더군.


4.
2004년 11월 28일 일요일 저녁부터 감지하기 시작한 맛. 북극의 얼음맛 같고, 그 얼음을 지나간 순록의 발바닥맛 같고, 얼음 사이에 끼어있던 이끼맛 같은 치약으로 꼼꼼하게 양치질을 한다.
그럴듯한 잠언 하나 건져내지 못한 하루.
그나마 이 CD라도 빌려오지 않았다면 굉장히 낙담했겠다.

그리고..라고 덧붙이고 싶은
창.밖.에.는.태.양.이.빛.났.다.-송병준
 




Posted by nuncoo at 03:54 AM | in Diary 2004 | Comments (31) | TrackBack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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