헛소리

인천에서 서울로 60Km가 넘는 거리를 차로 출퇴근하던 시절. 나의 꿈은 고속도로 통행료징수원이 되는 것이었다.
이미 용량을 넘어서 과부하가 걸려버린 머리를 억지로 굴릴 필요도 없고 그저 조그만 박스 안에서 영수증을 건네주거나 동전이나 세면 된다고 생각했으니까. 나는 매일 비슷한 시간에 출퇴근을 하는 사람의 차 넘버를 외게 될 것이고 돈을 건네는 습관을 기억할 것이며 허둥대며 지갑을 뒤지는 이를 위해 내 편에서 먼저 딴청을 피우다가 놀란듯 돈을 받는 재치를 보여줬을지도 모른다. 물론 그 일의 피로와 노동의 강도를 몰라서 하는 소리다.
그냥 내게는... 무료하고... 돌보지않아도 되는 황량한 시간 같은 것이 필요했나 보다

지금의 나의 동료는 음반자료실 같은 곳에서 일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자료실에 갔다가 모니터마다 명랑하게 떠 있는 싸이월드 미니홈피에 마음이 혹했을 것이다. CD 앨범명과 아티스트이름. 트랙명 같은 걸 데이터베이스에 입력하면서 짬짬이 싸이도 할 수 있는 생활.
그녀도 아마 일정한 시간 내에 자신의 머리를 쥐어짜서 뭔가를 끊임없이 쏟아내야 하는 일에 많이 지쳤을 것이다.

컴퓨터 앞에 오래 앉아있었으나 해야할 일은 다 하지 못했고
어쨌거나 내일은 월요일이다.

Posted by nuncoo at 02:38 AM | in Diary 2005 | Comments (8) | TrackBack (0)

봄, 밤, 산보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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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행복을 표현하는 데에는
몹시 서투르고 인색함을 이 나긋나긋한 봄밤 깡총거리며 산보를 하고오니 이제야 알겠네.

Posted by nuncoo at 12:19 AM | in Diary 2005 | Comments (10) | TrackBack (0)

봄, 밤, 산보 1

곧 어버이날이길래 인터넷 쇼핑몰에서 카네이션 꽃바구니 같은 걸 구경하다가
올 봄에는 작정하고 꽃과 대면한 적이 한번도 없다는 걸 깨달았다.
뭐 하느라고 저 안간힘을 쓰며 피어나는 꽃에게 다정한 눈길 한번 던져주지 못했니? 
봄밤의 꽃들은 적나라하지 않아서 좋구나. 어둠과 적당히 뒤섞여 비밀처럼 은밀해서 좋구나.

쿨픽스 5700이 생긴 이후 딸기군에게 생색만 백만번 내면서 넘겨준 구닥다리 파워샷 S100을 들고 나섰다.
그림을 그리는 기분으로 찍은 사진.




모니터로 보니 머릿속으로 그렸던 그림과 얼추 비슷하게 나왔다.

Posted by nuncoo at 11:58 PM | in Diary 2005 | Comments (2) | TrackBack (0)

그냥저냥

1.
파이어폭스에 Html Validator (based on Tidy) 0.5.8, Web Developer 0.9.3, FastDic 0.2.4, LinkChecker 0.1.2 이런 확장기능들을 깔아놓고... 난 점점 앞서가는 웹운영자가 되려나봐. 라고 잠시 우쭐했다가 몇 개의 에러와 수많은 워닝을 받고보니 풀이 팍 죽는군.
이건 꼭 느닷없이 아이스께끼를 당한 기분이라고나. 그렇지만, 에잇! 짐짓 무심한 척.

Posted by nuncoo at 11:50 PM | in Diary 2005 | Comments (5) | TrackBack (0)

8,9년전의 아이들

이 사진과 비슷한 시기에 찍었으니 아마 8,9년은 족히 되었을 것이다.
내 소유의 첫카메라로 찍어서 현상과 인화까지 직접 했던... 치기와 열정만 묻어있는 사진들이다. 지금은 물론 그것마저 사라진지 오래다. 누구말대로 그땐 정말 몇 년만 지나면 난 사진사가 되어있을줄 알았다. 지하실이 없는 우리 집 어느 곳에  암실을 차려야하나 하는 생각까지 했으니까.
흥미의 유효기간은 상당히 짧아서 1년을 채 넘기지도 못했다. 남의 사진을 한가롭게 구경하는 것과 내가 직접 셔터를 누르는 건 전혀 다른 일이었다. 돈도 필요했고 시간도 필요했고 예상치도 못했던 고민들이 아무 데서나 카메라를 들이댈 용기를 꺾어버렸다. 그때 30만원에 육박하는 거금을 들여 장만했던 스트로보는 사물함에 고이 모셔져있다가 한번도 사용해보지 못하고 중고시장에서 팔렸다. 그 돈으로는 뭘 했던가. 딸기군과 고기를 먹었던가, 나의 또다른 허영에 효과도 없이 쓰였던가.
그래도 나중에 만약 나의 2세라는 것이 생긴다면 빅피쉬의 에드워드 블룸처럼 '엄마는 왕년에 말야...'라고 떠벌릴지도 모르지. 딸기군은 옆에서 '이 CD들을 봐. 아빠는 왕년에 말야...'라며 들썩거리지나 않을지.  배려심 없는 매정한 아이들이라면 이런 말로 되받을지도 모르겠다.
" 하여튼 개나 소나..."

 


사진을 클릭하면 큰 사진으로 뜹니다만,
이것은 인화해두었던 것을 디카로 다시 찍은 것. 다른 건 기억나지 않고 필름은 아마도 티맥스 400. 조카들인데 이 작던 아이들이 벌써 중학생이 되었다.

 
  DSCN1642
  Originally uploaded by nuncoo.

  
  DSCN1618
  Originally uploaded by nuncoo.

비슷한 시기에 찍은 사진. 당시 아주 미안했던 마음이 아직도 남아있는 사진이다. '찍어도 될까?' 라고 동의를 구하긴 했지만 아이는 거부의 의사를 어떻게 표현해야하는지 모르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순박했다.
왠지 옛날 사진에서나 보던 70년대의 아이같은 느낌.
이 아이는 건강하고... 무엇보다도 결핍을 모르는 어른이 되었길 바란다.

또 한장, 대학로에서 농구를 하다가 잠시 숨을 돌리고 있는 아이들이다. 교복을 입은 당대의 중고생들만 찍어보리라 생각하던 시점에 찍었지 싶다. 이 아이들은 이제는 더이상 아이들이 아니겠다.

Posted by nuncoo at 03:14 AM | in Diary 2005 | Comments (6) | TrackBack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