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vember 08, 2008

1107

오랜만에 사주를 보았다.
정오쯤에야 간신히 일어나는 내가
아침에 일어나
회식 때 아니면 갈 일이 없는 강남까지 차를 몰아 부지런을 떨었다.



역학 같은 것하고는 거리가 멀어보이는 곱상한 얼굴의 사주카페 사장님은
복채를 반만 받았다.
나에게 딱히 해준 말도, 해줄 말도 없어서라고 했다.
한날 한시에 태어나도 사는 모양은 똑같은 이가 없다고 했다.
단지 그 사람의 성향- 이 단어가 아니었는데, 생각나지 않는다,요새 이렇다 내가- 에 따라 A,B 등 몇 가지 유형대로 삶이 펼쳐지는데, 간혹 나처럼 그 유형에 속하지 않아 곤혹스러운 경우가 더러 있다고 했다.
나처럼 안정지향으로 사는 사람이 사주를 보는 입장에서는 참 할 말이 없는 케이스라고 한다.


사주보는 아저씨를 위해서라도 조금 더 액티브하게 살았어야 했나.
돌아보니 대체적으로 무난하게, 큰 변화 없이 살았다.
변화라고 해봐야 방송사를 한 번 옮긴 것, 결혼, 그리고 아버지를 잃은 것뿐이다.
요란스럽게 실연을 하고,
곧 죽을 것처럼 난리를 친 적도 없지 않으나 나만의 별난 경험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 나는 참 변화없이 살았구나.
그랬었다, 변화의 기회가 와도 대안이 없으면 움직이지 않았다.
아저씨의 말에 의하면 올해는 막연했던 것들이 내년에는 보다 분명해진다고 한다.
내년부터는 운이 따르니 느낌대로 움직여도 손해볼 일은 없을 것이며
하지만 운이 들어와도 내가 움직이지 않으면 내 것이 되지 않으니 잘 판단해서 움직이라고 했다.
뭐 대충 이정도.


복채를 반값으로 할인 받으며 언뜻 스친 느낌이 어떤 것이었는지 이제야 알겠다. 나는 자존심이 상했다.
일을 벌이지않으니 이루어질리 없고
움직이지 않으니 거두어질리 없다.
무엇이 겁나서 머문 자리에서 꼼짝하지 않았던 건지.


그리고
이제야 그걸 깨달아서 뭘 어쩌자는 건지.



Posted by nuncoo at 03:48 AM | in Diary 2008 | Comments (6)

September 07, 2008

느닷없는 0907 아침

오분간


나희덕

 
이 꽃그늘 아래서
내 일생이 다 지나갈 것 같다.
기다리면서 서성거리면서
아니, 이미 다 지나갔을지도 모른다.
아이를 기다리는 오분간
아카시아꽃 하얗게 흩날리는
이 그늘 아래서
어느새 나는 머리 희끗한 노파가 되고,
버스가 저 모퉁이를 돌아서
내 앞에 멈추면
여섯살배기가 뛰어내려 안기는 게 아니라
훤칠한 청년 하나 내게로 걸어올 것만 같다.
내가 늙은 만큼 그는 자라서
서로의 삶을 맞바꾼 듯 마주보겠지.
기다림 하나로도 깜박 지나가 버릴 生,
내가 늘 기다렸던 이 자리에
그가 오래도록 돌아오지 않을 때쯤
너무 멀리 나가버린 그의 썰물을 향해
떨어지는 꽃잎,
또는 지나치는 버스를 향해
무어라 중얼거리면서 내 기다림을 완성하겠지.
중얼거리는 동안 꽃잎은 한 무더기 또 진다.
아, 저기 버스가 온다.
나는 훌쩍 날아올라 꽃그늘을 벗어난다.

 

돌아보면 기억나지도 않을 아침.
창밖이 봄인지, 여름인기, 가을인지..., 이 자리에 앉아서 긴 세월을 견딘 것처럼 아득하게만 느껴지는 아침. 1시간여를 책상 앞에 우두커니 앉아있었다.


Posted by nuncoo at 10:33 AM | in Diary 2008 | Comments (1)

August 25, 2008

0824

누가 말을 할 때 횡설수설하는 걸 견디질 못한다. 이것도 직업병인가?
쓸데없이 말을  길게 늘어놓는 것도 참지 못하고 정확한 명칭이나 용어를 사용하지 않고 말로 설명하는 것도 답답해한다.
어린이의 이야기를 들을 때는 성인의 말을 들을 때보다 더한 인내심이 필요할 거다.
하지만 나는 똑같은 기준으로 말을 듣고 '이 아이는 의사표현을 왜 이 정도밖에 하지 못할까' 한탄한다.
어느 때는 상대방이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그러니까 당신이 말하고자 하는 것이 이거죠?'라고 요약해서 확인을 받기도 한다. 
통화만 하고 만나본 적이 없는 어떤 사람은 나에게 " 왜 그렇게 급하세요..."하며 의아해한 적도 있으니깐.
글쎄, 왜 그렇게 급할까, 왜 상대방이 횡설수설하는 걸 느긋하게 들어주지 못할까.



오늘은 엄마가 전화를 하셔서 고장난 압력밥솥 이야기를 하셨다.
엄마왈, 압력밥솥 뚜껑에 달려있는 두 개의 툭 튀어나온 부분이 자꾸 쓰러진다며 했던 이야기를 하고, 또 하신다.
했던 이야기를 하고 또 하시는 바람에 답답해진 나는 '밥솥 위에 튀어나온 것이 두 개니, 둘 중에 어떤 걸 말하는지..., 쓰러지는 건 취사도중에 그런 건지, 보온 중에 그런 건지... 정확하게 말하라'며 짜증을 냈다.
대화가 이런 식으로 시작되면 그 다음에는 서로 겉도는 이야기만 오가기 마련이다.
밥솥이 왜 그런지 물어보려고 전화했을 뿐이라며 서둘러 전화를 끊으려는 엄마 목소릴 들으면서도 다정한 제스처를 취하지 못한 채 그냥  끊고 말았다.
나조차도 정확하게 알지 못하는 압력솥 뚜껑의 튀어나온 부분 명칭이 뭐가 그리 중요했을까.
밤이 되어서도 계속 마음에 걸려 전화를 할까하다가 주무실까봐 그냥 두었다.
나의 까칠한 대꾸에 엄마가 마음이 상하지 않았기만 바랄뿐이다.




쿠쿠홈시스 홈페이지에 가보니 뚜껑에 튀어나온 것 두 개중 하나는 압력추,  하나는 스팀캡 정도 되나 보다.
사실 이런 이름 따위 궁금하지도 않고, 알고싶지도 않았건만 내 성질때문에 일이 이상하게 꼬여버렸다.




 

Posted by nuncoo at 03:46 AM | in Diary 2008 | Comments (4)

August 02, 2008

0801





허니맘 블로그에서 퍼온 사진.
스위스라는데... 만년설에 파란 하늘.... 상상밖의 풍경이라 감탄이 절로 나옴.
저 망원경 옆에 서서
"제 고향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풍경이죠." 라고
가슴 벅찬 대사 한 줄 읊어주고 싶구나. 
나도 풍광에 압도당해보고 싶다구.


자전거 끌고 안양천에라도 나가야할 분위기.


Posted by nuncoo at 04:40 PM | in Diary 2008 | Comments (6)

July 23, 2008

오랜만에 잡설

1.
오래 알고지낸 동생이 몇달전 결혼을 했다.
생각이 트인 집안에서 무난하게 자란 아이라 결혼에 걸림돌이 없을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보다.
결혼날짜를 잡기까지 이쪽에서 남자 쪽을 내켜하지않았단다. 이유란 것도 알고보니 웃음만 난다.
"엄마가요. 우리 신랑이 목표도 없고 굼뜨는 남자 아니나며...
두 시간 걸릴 일을 세 시간 붙잡고 끙끙거리는 사람같아서 싫대요."
듣는 순간 내가 먼저 움찔했던 기억이 난다.


2.
나란 사람은 일생이 딴짓거리였다.
지금도 해야할 일을 제쳐놓고 두 시간째 딴짓을 하는 걸 보면 확실히 그렇다.
그렇다고 해야할 일을 나몰라라 하는 성격도 못된다.
다만 해야만 하는 '일'을 '연속'으로 하는 건,
가장 크게 인내심을 발휘한다 해도 이틀 이상은 못하겠다.
일요일밤부터 오늘 화요일 자정너머까지 잠자는 시간을 빼고는 일만 했다. 아 증말 토할 것 같아.
그리고 한바탕 소동이 끝난 뒤, 또 한 건의 할 일을 뒤로 한채 나는 또 딴짓거리 중이다.
그래야만 속이 가라앉을 것 같다.
어떤 이는 담배를 피우며 한숨 돌리듯이 나는 만화 보고, 남의 글 보고... 이렇게 딴 짓을 하며 숨을 돌린다.
딴짓거리, 딴청은 나의 숨구멍이다.


3.
오늘 아침엔 정말로 심각하게 '나는 왜 늘 시간이 부족한 걸까...'  생각을 해보았다.
나는 남들이 두 시간에 마칠 일을 세 시간동안 붙잡고 있는 사람이다.
게다가 일만 하고는 살수는 없으며
자주 종종 딴 짓을 해야만 정상호흡을 하며 살 수 있는 사람이다.
터보엔진이 달린 것처럼 다다다다 키보드 위를 맹렬하게 달리는 남의 손가락을 부러워서 침흘리며 쳐다보는 사람이며, 불필요한 호기심 없이 필요한 것들만 집중적으로 학습하는 사람이 마냥 부러운 사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어쩔수 없이!!  태생적으로 게으르고,
불필요하게 딴짓을 많이 하는 사람이다.
그러니 시간은 늘 부족할 수밖에 없다.




4.
지금에야 곰곰히 생각해본다.
아는 동생의 어머니는 남들은 두 시간 걸릴 일을 세 시간동안 붙잡고 끙끙거리는 사람의 속성을
잘 알고계셨을 터이다.
그런 사람들의 우유부단함, 요령없는 태도,
노력만으로는 따라잡기 힘든... 재능없는 노력파들의 딜레마.
이런 것....
 




무슨 얘긴지도 모를 잡소리.
뭐라고 지껄인 게냐 대체.
아무튼 그렇다는 얘기다.


Posted by nuncoo at 04:39 AM | in Diary 2008 | Comments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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