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nuary 16, 2005
우리나라에서 가장 예쁜 이름을 가진 극장
서울 시내 한복판.
그것도 조명상가와 각종 공구상가가 어수선하게 들어선 남루한 청계4가에는 바다극장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예쁜 이름을 가진 극장. 10여년 전의 그는 바다극장을 이렇게 불렀다.
극장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그리고 청계2가부터 4가까지를 휘젓고 걸으며
우리는 '바다극장'이라고 이름 지은 주인의 작명센스를 칭찬했을 것이다.
허름하고 칙칙한 분위기도 '바다극장'이기에 운치와 낭만으로 여겨졌다.
그날 본 영화도 기억한다.Dawn.
영화를 보고 난뒤 얼마 동안 나스타샤 킨스키가 나온 Dawn이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느냐고 여러 사람들에게 물었지만 맞장구를 쳐주는 이가 아무도 없었다.
영화는 극장의 분위기만큼이나 어둡고 우울했었지 아마.
영화에 나온 공간은 호텔의 복도와 객실 내부가 전부.
배우도 여주인공으로 나온 나스타샤 킨스키와 벨보이로 나온 남자배우 딱 두 사람뿐이었다.
혹시 내 기억이 잘못되었나 싶어 IMDB를 검색해보니 역시 맞다.
그 외에 기억나는 것이라고는 나스타샤 킨스키의 하얀 등. 그리고 블라인드 틈을 통해 밖을 보던 옆 얼굴.
줄거리는 기억나지 않으나 나중에 다니엘 살나브의 '길고도 가벼운 사랑' 을 보며 Dawn을 떠올렸던 걸로 보아 그냥 하염없이 어떤 남자를 기다리는 여자의 이야기쯤이었나 보다.
오늘 대학로로 가는 길을 잘못 들어 두 개 차선만 남은 청계천변에서 30여 분 가량을 맥없이 서 있다가 바다극장을 보았다.
아, 아직도 있었구나.
여전히 우리나라에서 가장 예쁜 이름을 가진 극장...
Posted by nuncoo at January 16, 2005 02:47 AM
정말 무슨 영화를 볼 작정도 없이
길을 가다가 문득 보게 된 영화가 있어요.
지금은 없어졌는데, 장충극장이었나
장충체육관 맞은편 건물의 지하에 있었던
그렇게 보게 된 영화가 '정복자 펠레'였어요.
처음엔 정말 무슨 축구영화인가 했었죠.
런닝타임이 3시간이 넘었던가.
그 긴 영화를 지루할 틈 없이 보고 나왔는데
마음에 무언가 찡한 기운이 쉽사리
사라지지 않는 거예요. 아버지와 함께
미국으로 떠나는 펠레의 뒷모습이
영 지워지지 않는 거예요. 그래서
공중전화에 매달려 여기저기 전화를 걸었어요.
나랑 술 마시자. 술 좀 마셔줘.
이 기분으로 집에 가면 잠을 못 잘 것 같아.
그런데 모두들 피곤하고 거기는 너무 멀고
이미 잠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어쩔 수 없이 발길을 돌리고 말았다는...
결국 집으로 맥없이 돌아오는 전철 안에서
내 앞에 놓여진 미래가 막막하여
유리창에 비친 내 모습만 물끄러미 쳐다보았다는...
극장에서 종일 시간 때우시던 아저씨들도 갈 곳이 없어지고 있어요 :)
그 영화, 원제가 '알바'군요. 저도 인천의 '자유극장'이 생각납니다. 지금처럼 뭐가 뭔지 모를 멀티플렉스 이름보다는 훨씬 포근하달까. 스타벅스, 버거킹, 멀티플렉스 시대에 허름한 재개봉관을 추억하는 걸 보니 늙어간다는 증거일까요.
Posted by: hurd at January 17, 2005 02:36 PM푸른땅- 같은 날 청계천을 지났군요. 이런 우연이.
허니맘- 그렇지않아도 홈에 가봤더니 근황보고가 없길래 아직 안좋은가..했네.
이번 주에 전화할게
언니 나 이제야 정신차렸네. 아직 퇴원을 안해서 완전 정신 차린건 아니지만. 아휴 힘들어..
애도 힘들겠지만 어제 오늘 나도 탈수상태였어.
13kg되는 애를 조심조심 안고 다니기 힘들었어
병원에서 계속 있기도 지치고. 내가 환자같았다니까..
집에와서 하루종일 이렇게 멍하니 있네..
일도 겨우 하고 말야.
어여 자세한거 연락좀 해주길.
어제..
청계천 지나가다가 봤어요...
바다극장....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