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아이와 현학자

심심할 때마다 한 번씩 들춰보는 '라 퐁텐 그림우화 /시공사'중에서

"나는 이 이야기를 통해 어리석은 자의 쓸모없는 훈계를 보여주려고 한다. 한 어린아이가 센 강가에서 장난을 치다가 물 속으로 떨어져버렸다. 그러나 다행히도 근처에 버드나무 한 그루가 있어서 버드나무의 가지가 아이를 구했다.
어린아이가 그 나무의 가지에 매달려 있을 때, 그 곁으로 한 현학자가 지나갔다. 아이는 그에게 소리쳤다. " 살려주세요! 죽을 것 같아요"
현학자는 그 소리를 듣고 쳐다보며, 때에 어울리지 않는 매우 심각한 어조로 그를 꾸짖었다. " 아, 이런 말썽꾸러기 꼬마 같으니라고! 이런 바보 같은 짓을 하다니! 저런 개구쟁이들을 키우고 항상 신경 써야 하는 부모들은 얼마나 불행한가! 아,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그들의 운명에 정말 동정이 가는구나!"
그는 이런 식의 이야기를 다 끝내고서야 비로소 아이를 물가로 내려다주었다.
나는 이 글에서 그대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을 비난하고 있다. 모든 수다쟁이,비평가, 현학자는 내가 하는 말에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조물주가 그 종족을 축복했음인지 세 종류의 사람들은 그 수가 많은 편이다.
모든 일에서 그들은 혀를 놀릴 방법만 생각하는 듯하다.
이보시오, 친구여! 나를 먼저 위험에서 구해주시오.
그러고 난 후에 잔소리를 늘어놓으시오."

라 퐁텐의 그림우화에 관한 기사를 보다가 알게 된 그의 묘비명. 본인이 직접 썼다고 한다.

“장은 그가 왔던 것처럼 가버렸다. 그는 모든 재산을 다 탕진하고 많은 재물을 하찮게 여겼다. 시간으로 말하자면, 그것은 잘 쓸 줄 알았다. 시간을 절반으로 나누어서 반은 실컷 잠자는 데, 나머지 절반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데 썼으므로.”



'동물과 신의 입 빌려 삶을 곱씹다' /고명섭 기자/한겨레 신문

동경 사람들

원체 소심하고 주변머리가 없는지라 모르는 사람들을 찍을 때는 겁부터 먹는다. 달려들어서 카메라를 뺏지야 않겠지만 일단 찍고 있다는 것을 들키고 나면 그 사람이 친근하게 V자라도 그려주지 않는한 더이상 찍는 건 포기해야 한다.
하기야 나라도 그렇겠다. 누군가 모르는 사람이 나를 찍고 있다면 당장에 다가가 왜 함부로 남의 얼굴에 카메라를 들이대냐고 아주 과격하게 불쾌감을 표시할지도 모른다.
동경에서도 관광객이라는 건 면죄부가 되지 않았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닥치는대로 찍었는데 와서 보니 다 소심샷이다.

모자이크타일과 화병

길

1.
집에서 일터까지 가는 고작 3Km의 길에서도 세 번. 선택의 기로에 선다.
이번에 좌회전 할까? 다음에 할까?
첫번 째 좌회전시 빠져나갈 수 있는 차량은 넉 대에서 다섯 대. 하지만 다음 우회전까지는 거쳐야할 신호등이 많다.
두번 째 좌회전도 상황은 비슷하지만, 상가가 많은 지역이라 자칫 잘못하다가는 불법주차한 트럭 뒤에 발이 묶여 옴짝달싹 못할 위험이 있다.
세번 째 좌회전은 차량이 많은데 비해 신호가 짧다.
길의 상황을 훤히 꿰뚫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비어있는 좌회전 차선을 지나치게 되면 혹시나 싶어 그 자리에 마음이 갔다.
처음 몇 번은 택시를 타서도 마찬가지였다.
'신경을 끄자' 눈으로는 창밖을 훑으면서도 머릿 속으론 ' 저 비어있는 좌회전 차선을 두고 왜 직진을 하나' 기사 아저씨가 못마땅하여 '말 걸어도 대답하지 않으리라' 득도 없는 심통을 부렸다.

2.
"내가 이 길은 빠삭한데, 지름길을 많이 아니까 운전이 더 힘들어요.
길을 잘 모를 때는 아는 길로 그저 열심히만 달렸는데 지름길을 많이 알게 되니까 자꾸 머리만 굴리게 돼.
피곤해"
어느 날 만난 택시 기사 아저씨. 첫번 째 좌회전 신호를 그냥 지나친 후 말씀이 길어지신다.
" 바둑도 7급 둘 때는 좋았지. 아무 것도 몰랐으니까. 근데 할 수록 어려워. 돌아가는 게 눈에 읽히거든.
사는 것도 어째 살 수록 어려운 것 같아."

오늘 만난 누군가는 살다보면 어느 순간 모든 게 간결해지고 단순해지는 시기가 온단다. 그게 바로 고수라고.
결과는 똑같을텐데 먼 길을 에둘러가고, 혼자 엎치락 뒤치락 자기를 닥달하는 건 아직 멀었다는 얘긴가?
아둔해서 그렇든 깨달음이 부족해서 그렇든 진창에서 굴러봐야 그게 진창인줄 아는 나같은 사람한테는 영 가능성이 없는 얘기다.

3. 그림판이라는 걸 처음 써봤다. 그림판을 써보기 위한 포스팅인지도.

제목을 달라하니..불행이나 불안에도 제목이 있을까 싶고.

지금까지 '점집'이라고 하는 곳... 대문에 정체 모를 깃발이 꽂혀있다든지, 왠지 음산한 분위기에 압도되어 거기서 나오는 점괘는 다 믿어줘야만 할 것 같은 분위기의 점집을 내 발로 찾아간 기억은 세 번쯤 되는 것 같다. 그것도 처음 갈 때와 다음에 갈 때의 마음이 달라서... 처음엔 '대체 내 앞 날이 과연 어떻게 될런지 알고나 당해보자' 는 마음도 있었던 것 같은데 
한두 번 이력이 쌓이니 점괘를 내는데 힌트가 될 만한 단서는 절대 발설하지 않고 표정관리도 하면서  '이건 흡사 나와 점쟁이 간의 심리싸움이랄 수도 있겠군' 이런 생각도 했던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 번이나 점집을 찾았다는 건, 예측 불가능한 상황을 견디지 못하는 나의 습성상 도저히 그 곳을 찾지 않고는 못배길 상황이 세 번은 벌어졌었다는 얘기겠지.
점을 믿는 사람은 점쟁이가 과거의 이력 하나만 제대로 맞혀주면 다른 얘기도 다 맞을 거라고 믿으며 점쟁이의 허물을 제 스스로 덮어버린다. 나도 그랬다. 꺼림칙한 점괘 때문에 속상해하고 불안해하고...
근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점을 믿지 못한다.그럴 수 밖에 없는 게 기억력이 좋지 않다. 어떤 점괘를 받았었는 지도 금방 잊어버린다. 

지금은 그냥.. 모든 상황이 종료된 후에
'이런 결말도 나의 운명에 예정돼 있던 것일까?'  상상이나 해볼 뿐.

아사쿠사의 센소지에서는 100엔을 내면 점괘를 받을 수 있다.
사진 왼쪽 빼곡한 서랍이 점괘가 든 서랍이다.
흉한 괘를 받으면 여기 이렇게 달아놓고 가면 된다.
그럼 점괘에 나왔던 나쁜 일이 생기지 않는다고 믿는 모양이다.
애써 피하고 싶은 마음.
불행하다는 자각보다 불행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더 진빠지니까. 더 슬플 수도 있으니까.





뭔가 불안한 사람들은 불길하고 찜찜한 예감들을 여기에 걸어놓고 가면 된다.
100엔? 안받는다. 무료다. 물론 최초의 수혜자는 내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