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ril 11, 2006

댄스댄스

인생에서 가정법이라는 게  얼마나 쓸모없는 것인지는  최윤님도 완곡하게 적으셨지만 까짓 상상도 내 맘대로 못한다면 사는 게 무슨 재미가 있을까.
...만약 나에게 이런 재능이 있었다면 내 인생은 어쩌면 지금과는 많이 달라져있을 것이다...
나에게는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춤'이다. 
예전에 간혹 춤추는 곳에서 뒤풀이를 하게 되면 나는 절대 안일어나고 앉아서 안주나 축내거나 맥주만 홀짝이는 축에 속했다.  사정도 모르는 사람들은 괜히 빼는줄 알고 억지로 잡아끌곤 했지만 그건 정말 신이 버린 몸, 타고난 몸치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어였다.  나가서 엉거주춤 스타일을 구기느니 차라리 의자를 지키는 게 체면관리상 낫다고 판단했던 거다.









춤에 관한 나의 공식적인 기록은 중학교 1학년에서 멈춰졌다.
그것도 혼자 추는 춤도 아니고, 둘이 추는 춤은 더더욱 아닌 .... 한낱 기계적인 율동에 가까웠던 군무.
때는 아마 여름의 열기가 식지않은 초가을쯤. 운동장에 모인 우리는 친구가 가져온 카셋트를 켜놓고 운동장의 모래가 파여 붉은 흙이 드러날 때까지 매스게임 연습을 했다. 음악은 Laura Branigan의 'Gloria.'
경쾌한 전주에 맞춰 무릎 관절을 탁탁 튕기며 시작하던 첫 동작은 아직도 기억이 나는데 막상 체육대회에서 시연을 한 기억은 없다.







- 영화 '메종 드 히미코'의 댄스홀 장면-


춤을 잘 췄다면 어쩌면 인생이 조금 더 즐거웠을 텐데 말이다.





-영화 '엘리자베스타운' 수잔 새런든의 탭댄스-


어디에 나와도, 어떤 역할을 해도 뻐근한 그녀의 존재감.  긴장 풀고 느슨하게 있다가 탭댄스 추는 장면에서 나도 모르게 울컥하고 말았다.
근래에 본 가장 멋진 춤장면이 될 듯.









" 미치 없는 삶을 잠깐 이야기 해볼까요?.
30년 같이 한 보험아저씨한테 전화했어요.
아, 미치가 그 사람 아들이
웨스트포인트 입학하도록 도와주었죠.
미치가 죽었다고 알렸죠.
그는 이틀 동안 제게 전화를 안했어요.
차, 은행, 보험아저씨, 세상 모두 누구도 신경 안썼어요.
우리들 같지 않았죠.
전 언제나 탭댄스를  배우고 싶었고
그래서 학원에 등록했습니다.
요리도 배우고 싶었고 그것도 시도하고 있죠.
화장실도 고쳤어요.
물론. 혼자서.
그리고 웃는 걸 배울겁니다.
왜 미치가 살아있을때 보다 내가 즐거우면 안되는 걸까?
아시겠지만, 시간이 걸린다는 걸  전 깨달았습니다.
삶에서 즐거움을 느끼는 것도 그럴테구요.
그래서 코미디스쿨에  등록했죠.
예, 압니다. 알아요. 
제가 가장 나이든 학생이죠.  "






러닝머신 위에서 양팔을 휘적휘적 저으면서 무아지경 상태로 마구 걷다가 ...
그런 내 모습이 상당히 웃길 거라는 생각을 하다가...
춤 생각이 나서 중얼중얼 읊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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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ril 08, 2006

달콤,살벌한 연인 (2006)


이런 영화는 보고난 후, 집에 와서 '영화와 처음 만나는 곳-네이버 영화' 같은 곳에서 '네티즌 리뷰'나  '내가 뽑은 명대사' 같은 걸 보며 2차로 한 번 더 웃어줘야하는데... 18세관람가라 그런가, 개봉한 지 얼마 안되서 그런가 2차로 키득거릴 소스가 부족해 혼자 아쉬워하다 말았다.
얼마나 웃기길래? 살벌하게 웃긴다. 일일이 헤아릴수 없을만큼 자주 웃기고 조폭영화처럼 사람을 패대기쳐가면서 욕설로, 더티하게 웃기는 것도 아니고 대사빨로 제법 귀엽게, 제대로 웃긴다.  '황대우'라는... 전혀 로맨틱 코미디의 남자주인공스럽지않은 찌질이 꼰대 캐릭터의 힘이다.
박용우의 황대우는 찌질이 캐릭터로는 홍상수 영화의 김상경과 쌍벽을 이룰만 하다. 굳이 하나를 더 끼워넣자면 '연애의 목적' 에서 박해일이 연기한 교사 '유림'도 모자라진않는데.. 역시 최고봉은 황대우다. 처음에는 '딱 김상경이 했어야 했는데..'하고 생각했는데 다 보고나니 박용우이외의 다른 사람은 생각도 나지 않는다. (정작 감독은 영화 찍는 내내 이 역은 조승우가 했어야 했는데.. 라고 했다고 한다.) 
티켓파워는 없지만 이미지가 아직 정형화되지않은 배우들과 재기와 상상력 넘치는 감독이 19억 갖고 만든 영화. 깔깔거리며 웃고나면 돈값 한다는 생각이 든다. 최근에 영화 보고 이만큼 웃었던 적이 없었던지라 나름 적극 추천.


"너도 키스할 때 혀 넣고 그러냐? 어..나도 얼마전에 넣었어~~.하하"
"혀 빼지마 혀 너무 좋아 좋아.....  혀 퇴고(최고)!"
"내가 그럼. 니 말을 일일이 새겨 듣고. 소중히 기억하고 간직해야 하니 ? "
"아저씨, 저 귀여워요? "


이런 대사들도 기억에 남고
영화의 공식 홈페이지에 올라와있는 감독의 말도 인상 깊다.


" 나는 그때
인류 구원에 관한 주제를 다룬 시나리오를 쓰러 한 달 동안 연락을 끊고
서해 어느 바닷가에 내려가 있었다.
나는 직감적으로 이 영화가 도스토예프스키적인 작품이 될 것임을 알았다.
유일한 문제거리는 타르코프스키를 인용하느냐 마느냐에 관한 것이었을 정도로
작품에 대한 확신이 있었다.

한 달 후. 서울에 올라와서 오랜만에 메일을 확인해보니,
여자친구가 보낸 이메일이 도착해 있었다.

" 우리 그만 만나."

며칠 후, 나는 인류 구원의 문제를 다음으로 미루고
<달콤, 살벌한 연인>을 쓰러 다시 서해로 내려갔다.

백 권의 위대한 문학 작품을 읽어보시라.
그/ 그녀가 보낸 문자 메시지 한 줄을 이길수 있나.
다시 한 번 그 백권을 살펴보시라.
도대체 사랑을 다루지않은 작품이 몇 개나 되는지. 



- 달콤 살벌한 연인 홈페이지에서 감독의 말 - "





Posted by nuncoo at 02:01 AM | in Culture | Comments (9) | TrackBack (1)

April 02, 2006

스윙 걸즈 (Swing Girls, 2004)

   .

나카무라였나? 아무튼 건반소년의 바람대로 한다면 Swing Girls and a boy.
알고 먹는 인공감미료의 맛이다. 그 많은 소녀들이 기차에서 도시락 하나를 나눠 먹겠다고 난리를 칠 때부터  왠지 억지와 오버의 예감을 떨칠 수가 없더라니. 예상대로다.
뻔히 짐작되는 위기, 예상대로 가는 결말, 거기다 때마침 내려주는 폭설에, 달려온 버스까지 억지와 오버로 끌어가는 극 같지만 이상하게 거부감이 일지 않는다. 오히려 웃기고 신난다. 인공감미료의 맛이 그런 거지 뭐. 심각한 걸 기대했다면 '순 억지네.' 욕을 했겠지만 이미 알고 맛을 봤으므로 거부감을 가질 것도 없다. 게다가 심각하게 폼 잡지 않고, 뻔한 이야기를 사기당했다는 느낌을 주지 않고 기분 좋게  만들 수 있는 건 정말 대단한 능력이다. 구질구질한 배경을 가진 사람이 나오지 않고 어설픈 악역이 없는 것도 장점이다.  교내 공식합주부와 경쟁을 시킬 수도 있었을 텐데, 그 부분을 포기한 건 잘한 거고 수학선생님 캐릭터는 진부했지만, 포크듀오는 상당히 신선하고 웃겼다.
멧돼지가 등장하는 장면은 역시 거룩하고 웃겼다. 이런 걸 대체 어떻게 생각해냈을까.
그들이 멧돼지를 잡은 용감한 학생들로 신문에 실렸을 때, 나뭇가지에 걸려있던 송이버섯 봉지도 날 웃겼다.  포크듀오가 주조정실까지 들어가서 조명을 능수능란하게 다루는 건 막판에 좀 심했다 싶지만 '까이꺼, 뭐...'하는 사이에 자연스럽게 묻어간다.
뻔한 영화라기보다는 유쾌한 에너지가 기분 좋은 영화, '
스쿨 오브 락'이나 '홀랜드 오퍼스'처럼 소년소녀들의 성공담을 담은 성장영화의 족보에 충실한 영화쯤으로 보면 될 것 같다.


그나저나 논두렁 길을 달리던.. 두량 짜리 기차는 어디 가면 탈 수 있을까나?

Posted by nuncoo at 03:21 PM | in Culture | Comments (0) | TrackBack (1)

March 11, 2006

스페인 8- 세상 영광의 끝

세상 영광의 끝: Finis Gloriae Mundi -Valdes Leal  (1670-72  Oil on canvas, 220 x 216 cm  Hospital de la Caridad, Seville  )


그림을 여기 걸고 싶어도 차마, 올려놓지 못하겠다. 관심 있는 사람은 링크를 눌러보고, 할 수 있는 한 가장 큰 크기로 해놓고 자세히 들여다보길 권한다. 임신부에게는 권하지 않는다. 
돈 후안의 모델로 알려진 세비아의 귀족 '미겔 데 마냐라'라는 사람은 물려받은 유산으로 매우 방탕한 생활을 하다가 아내의 죽음을 계기로 잘못을 깨닫고 이후부터는 수도승 같은 생활을 했다고 한다. 그가 말년에 지었다는 자선병원. 지금은 병원 겸 빈민을 위한 시설로 쓰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병원 안,전혀 있을법하지 않은 곳에 이런 명화들이 걸려있다.
여행가이드 책의 세비아 '자선병원' 파트 맨 마지막 문장은 이렇게 끝난다.
[이곳에서 ... 발데스의 '세상 영광의 끝'은 꼭 봐야 할 걸작으로 꼽힌다. ]


관광객도 없고, 사람의 흔적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이른 아침 조그만 교회당 안에서 나는 바로 저 그림 앞에서 꼼짝할 수가 없었다. 충격이었다.
그림에는 제목은 커녕 소개글 하나 없었지만 나는 그것이 '세상 영광의 끝'임을 한 눈에 알아보았다.

썩어들어가는 육신과 그 안에서 기어나온 벌레들이 바로 눈 앞에서 꿈틀거리는 것 같은 무덤 속 풍경은 너무나 직설적인 '세상 영광의 끝'이었다.
세비아에 가는 사람은 자선병원에 들러 저 그림을 보고 올 것을 권한다.
들어갈 때는 절대 안보일 것이다.  좁고 퀴퀴한 교회당을 한 눈에 휘 둘러보고 '도대체 그 그림이 어디 있다는 거야?' 성난 얼굴로 나가려 할 때, 방금 들어온 문 위에 걸려있는 충격적인 그림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나가는 마지막 순간에야 시야에 들어오게끔 고려된 그림, 그게 바로 '세상 영광의 끝'이다.


Posted by nuncoo at 11:53 PM | in After Traveling | Comments (2) | TrackBack (0)

March 10, 2006

"브로크백은 우리가 양을 치던 산 이름이에요."





영화를 보고 느끼는 감흥의 반,
아니 반의 반 정도는 같이 본 사람과 보게 된 상황에서 기인하는 경우가 많으니까.
오늘 어떤 걸 봤어도 허기진 사람처럼 나는 영화를 빨아들였을 거라고 생각해도.
넓은 자리를 혼자 차지하고 앉아서 마치 스크린과 나 하나만 있는 것처럼 편안하게 영화에 몰입했기 때문이 아닐까. 애써 영화 자체의 가치를 깎아내리려해도 ... 저녁때부터 지금까지 감동의 양은 여전히 줄어들지 않는다.
영화를 보면서는 아마 서너번쯤, 강도가 다른 눈물이 찔끔 눈가에 고였다 사라졌던 것 같다. 에니스가 잭을 보내고 혼자 오열할 때, 실질적으로 마지막 만남이었던 강가에서 잭이 '우리에겐 브로크백 산 밖에 없어'라고 할 때. 로린이 떨리는 목소리로 잭의 죽음을 전할 때, 잭의 부모가 에니스를 맞을 때, 에니스가 잭의 옷장에서 잃어버린 줄 알았던 셔츠를 발견할 때, 그리고 에니스의 "I Swear."


이렇게 맘에 드는 영화를 만나게 되면 나는 꼭 하는 푸닥거리가 있다.
대개 그런 영화는 혼자 본 영화일 경우가 많아서 처음엔 누군가에게 전화를 해서 영문도 모르는 그 사람에게 내 감동의 일부를 일방적으로 떠넘겨버린다. 그리고 집에 와서는 미친듯이 O.S.T 음악을 찾아다니거나 비슷한 음악이라도 찾아 들어서 감흥에 살을 보태고 부풀려서 자뻑의 경지까지 기어이 가고야 만다.  이러면 나의 푸닥거리는 끝이 난다.

오늘은 푸닥거리를 하다가 원작소설에 얽힌 이야기를 읽었다. 와이오밍의 바에서 봤다는 60대 남자의 이야기가 슬프고, 묘한 느낌을 준다.


원작자 애니 프루는 ..1997년, 와이오밍의 한 바에서 60대 후반정도로 보이는 목축 일꾼을 보았다.
금요일 밤이니까 말쑥하게 차려입으려고는 했지만, 그의 옷은 낡았고 부츠도 여기저기 얼룩지고 해졌다.
 
" 그는 마르고 구부정했지만 단단한 근육질의 남자다운 타입이었다. 그는 벽에 기대고 있었는데, 바 안에 가득한 수십명의 예쁜 여자들이 아니라 당구치는 젊은 카우보이들에게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었다. 아마 단순히 당구게임을 구경하는 걸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의 표정에는 뭔가 비통한 갈망비슷한 것이 있었다. 나는 궁금해졌다. 혹시 그는 게이가 아닐까."
 


그러면서 그녀는 호모포비아적인 시골 와이오밍에서 성장하면서 자신의 느낌에 대해 확신하지 못하고 혼란에 휩싸인, 자신의 느낌에 대해서는 더듬거릴 수 밖에 없는 그런 사람을 상상하기 시작했다.
상상을 문자로 옮기는 과정은 훨씬 지난했다. <브로크백 마운틴>을 쓰면서 그녀는 거의 60번 이상 퇴고를 거쳤다.
심지어 문구 하나를 찾기 위해서 몇 주씩 걸리기도 했다.
 
"글이 막힐 때마다 찰리 헤이든과 팻 매스니의 앨범 <Beyond the Missouri Sky>에 수록된 'Spiritual'을 들었다.
잭과 에니스의 뒤죽박죽 엉킨 감정과 그들 관계의 슬픈 불가능성이 그 음악에 표현되어 있는 것 같았다. 내게 그 음악은 잭과 에니스의 주제가다."


출처: http://blog.naver.com/galapagos_55/100022169580  




덕분에 오랜만에 Beyond the Missouri Sky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자뻑의 최고경지에서 딸기군에게 이렇게 말했다. 로미오와 줄리엣, 러브스토리처럼 이 영화도  위대한 사랑영화의 고전이 될 거라고.


Posted by nuncoo at 02:08 AM | in Culture | Comments (2) | TrackBack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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